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
오영욱 지음
스윙밴드ㆍ312쪽ㆍ1만5,000원
여행의 중독성은 시간의 켜를 보고 만지는 데 있다. 침략, 전쟁, 착취, 반란, 평화. 한때 부글부글 끓었던 어떤 것들이 각국의 거리에 그을음처럼 눌어 붙은 걸 보며 우리는 안도하고 또 쓸쓸해한다. 건축가이자 여행작가인 오영욱씨는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2년 간 중국 11개 도시를 여행했다. 스스로 ‘오기사’라 칭하는 그는 프로 여행작가다. 지금까지 30여개국을 여행한 그가 최근 중국을 택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 잠들었던 대륙의 부활 현장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면 10년 전에 가야 했다. 모국의 미래를 점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일본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인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따라가 볼 마음이 드는 것은 그의 손에 들린 고지도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구한 중국의 고지도를 들고 각 도시를 돌며 현재와 비교한다. 거기에 건축가로서 건물과 거리에 대한 식견이 더해진다. 게다가 그는 얌전한 여행자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성량으로 고함을 지르고 툭툭 치며 지나가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핏대 높여 항의하는 대신 나이든 고양이처럼 조용히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과거나 상상 속으로 도망 간다. 그가 중국을, 타국을 견디는 방식이 재미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내릴 사람을 밀치며 탈 사람이 먼저 돌진하는 상황은 중국에서의 이색체험이다. 지금까지 가본 수십 나라들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으며, 나라의 경제수준과는 상관없는 어이없는 치열함이었다. 모두를 태우고 함께 가겠다는 위정자의 약속이 배신의 기억으로 축적되어 어떻게든 올라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전자가 내재된 것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베이징의 지하철에서 밀쳐진 그는 “제국주의의 폐해”가 탄생시킨 칭다오 맥주를 실컷 들이켜고, 주민센터를 한자로 그대로 옮긴 ‘주민중심’ 간판을 보며 웃는다. 마카우에 복제된 가짜 베니스에서 블랙잭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수입을 올리고, 난징에서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옛길을 발견하고 흥분해 다섯 바퀴씩 돈다.
그러나 중국은 여행자의 관대함을 시험하는 측면에서 이른바 ‘만렙’이다. 시종 느른한 척, 내내 곁눈으로 중국의 매력을 탐색하던 저자는 결국 인정한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중국의 아쉬움을 하나 꼽는다면 낭만과 보편적 질서의 결여다. 그것은 도시의 매력과도 결부된다. 중국의 현대 도시들은 매력이 없다. 낭만을 적대시하고 특수한 질서를 요구했던 공산주의의 영향이다.”
그가 고지도를 가져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의 공산화는 명ㆍ청대부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 시기까지도 이어졌던 중국의 어떠함을 말살시켰다. 저자는 그것을 “귀여움”이라고 부른다. 왠 귀여움인가?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지배하는 동안 사람이 드러낼 수 있는 귀여움은 사라졌다. 예전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맡은 일에 충실하다가 가끔씩 유머감각을 발휘한다거나 작은 실수를 저지른 후 멋쩍은 미소를 짓는 식의 귀여운 매력은 죄악이었다. 반동분자를 물색해 찾아낸 다음 큰 목소리로 공안에 신고 후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었다. 목소리가 클수록 더욱 가치 있는 자세로 평가를 받았다.”
드디어 큰 목소리의 기원을 찾아낸 것일까. 상하이 예원 입구 기와지붕 위의 작고 귀여운 석상 앞에서 그는 탄식한다. “수십 년 동안 귀여움을 느끼는 방법을 잊었던 중국인들은 개방 이후 경제대국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감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 결국 이 거대한 대륙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귀여움을 잊은 민족에게 매력은 없다는 저자의 입장은 사뭇 단호하다. 이를 1990년대 들어 한국에서 조금씩 재생되기 시작한 귀여움의 소산으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귀엽지 않은 나라에서 귀엽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간신히 귀여움을 지켜낸 자의 귀여운 여행기.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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