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공직 마무리 정현태 검사
뿌리 깊은 기수 문화에도 완주
검찰 역사상 15번째 정년 퇴임
“다른 정부 부처 공무원들 정년 퇴임하듯이 검사로서 제 정년 퇴임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세요.”
33년 9개월 검찰에 몸담고 지난 9일 정년 퇴임한 정현태(63ㆍ사법연수원 10기) 전 대전고검 검사가 2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난감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정년 퇴임이 ‘미화’돼 세간에 비쳐지는데 상당한 부담감을 내비쳤다. 정 전 검사는 “고민하면서 일 좀 하다 보니 (물러날) 때를 놓쳤고 세월이 흘렀을 뿐”이라며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산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가 다른 정부 부처 공무원처럼 공직생활을 완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검찰 조직의 특성 때문이다. 사법연수원 기수 문화가 뿌리 깊은 검찰에서 검사는 대개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옷을 벗는다. 그러면 주변에서도 ‘물러나야 하지 않느냐’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를 포함해 정년 퇴임한 검사가 검찰 역사상 15명밖에 되지 않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의 경력을 보면 검사로서 끝까지 완주한 점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는 검찰 내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잘 나가는’ 검사였다. 1983년 임용된 그는 대검 공안3과장과 공안1과장, 공안기획관을 차례로 지내고 2002년 전국 최대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지검 3차장검사를 지냈다. ‘검찰의 꽃’인 검사장 승진이 유력했다.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는 거기까지였다. 2002년 3차장 산하 강력부에서 가혹행위로 피의자가 숨진 사건이 발생해, 정 전 검사는 지휘책임을 지고 광주고검으로 좌천됐다. 이후 그는 15년간 서울ㆍ대전ㆍ대구고검 등 일선 수사라인이 아닌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럴 때 검사들은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 후배 검사들의 사건을 도맡아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정 전 검사는 관행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이런 저런 제 상황으로 정년까지 일한 것인데, 어떤 고상한 뜻이 있던 것으로 비칠까 봐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임사에서 “지나고 보니 이런 선배도 있다는 것을 보며 후배들이 생각을 달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국가로부터 범죄를 수사하도록 검찰권을 위임 받은 사람”이라며 “나의 검찰, 나의 검사가 아니라 국민의 검찰, 국민의 검사다. 이를 염두에 두고 사건 기록을 펼쳐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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