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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못생긴 건물을 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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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못생긴 건물을 참고 있을까

입력
2017.06.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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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가 16일 오후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책 '건축이 바꾼다'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어린이집, 파출소, 다가구주택 등 동네 소규모 건축물의 남루한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신상순 선임기자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가 16일 오후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책 '건축이 바꾼다'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어린이집, 파출소, 다가구주택 등 동네 소규모 건축물의 남루한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신상순 선임기자

버섯 모양 버스 정류장은 왜 만들어질까. 청사초롱이 달린 가로등은 누가 제안했고, 한결 같이 알록달록한 어린이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한국은 못생김에 관대한 사회가 아니지만, 유독 건물과 도시는 예외다. 못생긴 거리를 걷고 못생긴 건물에서 일한 뒤 못생긴 집에 들어가 잔다. 옷, 차, 하다못해 머그컵 디자인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그럴까.

“건축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건축으로 창출될 수 있는 가치를 아예 모르는 사회예요.”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의 저서 ‘건축이 바꾼다’(마티)는 제목 그대로 건축이 우리 사회에 일으킬 수 있는 변화에 관한 책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건축, 특히 동네를 채운 소규모 공공건축의 “남루함”에 대한 고민으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대형 미술관이나 체육관은 문화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체국이나 어린이집, 다가구 주택은 문화가 아니라 시설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진짜 주목해야 할 건 이런 작은 건축물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 사는 건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아니라 우체국과 파출소와 어린이집인데 이게 문화가 아니면 뭡니까.”

소규모 공공건축물 너무 남루해

대형 미술관은 문화라 생각하고

어린이집, 파출소는 시설로만 여겨

건축의 시대에 건설만 하니

동네마다 천편일률적 놀이터

가장 근본 원인은 설계의 부재

찍어낸 듯이 똑 같은 동네의 우체국 건물. 박인석 교수는 설계의 가치를 모르는 사회가 동네를 남루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마티출판사 제공
찍어낸 듯이 똑 같은 동네의 우체국 건물. 박인석 교수는 설계의 가치를 모르는 사회가 동네를 남루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마티출판사 제공

책은 끊임없는 ‘왜’의 행렬이다. 어쩌다 저렇게 못생긴 것들이 탄생했을까에서 시작해 싸구려 설계에 집착하는 정부의 행태로, 그것을 떠받치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으로, 또 그 법들을 낳은 1960년대 양적 팽창의 시대로 추적해 올라간다. 그리고 한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건축의 시대’에 도달했지만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건설의 시대’에 머물러 그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란 카피가 나온 90년대부터 이미 한국은 건축의 시대에 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방식은 제자리예요. 어린이집 10개가 필요하면 10개를 지으면 되고, 싸게 지으면 더 좋고, 이 사고가 법과 제도를 통해 대한민국 모든 건물에 박혀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 환경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소위 ‘3만불 시대’는 요원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가 비판하는 대상 중엔 천편일률적인 놀이터 디자인이 있다. 모래, 그네, 시소, 미끄럼틀, 약속이라도 한 듯 똑 같은 놀이터에 이상함을 느낀 그는 1979년 개정된 ‘주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그네, 미끄럼틀, 철봉의 종류와 개수를 지정한 것을 찾아냈다. 놀라운 건 이 규정이 1991년 폐지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놀이터는 그대로일까.

제도는 시장을 만든다. 10년 넘게 지속된 규제와 놀이시설 안전인증법으로 인해 놀이설치물 시장도 한정된 제품을 찍어내는 데 익숙해졌다. 박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묻는다. ‘그럼 다양한 놀이시설을 만들어서 안정인증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결국 그가 찾은 근본적 원인은 설계의 부재다. 놀이터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니 다양한 놀이시설도 필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오직 제도와 관습에 거스르지 않는 과거의 디자인뿐이고,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70년대 놀이터에서 노는 이유”다.

프랑스 니스의 자연목을 재료로 한 어린이놀이터. 한국의 놀이터는 안정인증과 설계 부재로 인해 1970년대식 놀이터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마티출판사 제공
프랑스 니스의 자연목을 재료로 한 어린이놀이터. 한국의 놀이터는 안정인증과 설계 부재로 인해 1970년대식 놀이터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마티출판사 제공

박 교수는 설계의 중요성을,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디자인에 눈을 뜨는 것’에 한정 짓는 것을 경계했다. “잘 설계된 어린이집은 창문의 위치와 복도의 길이를 통해 아이들과 주민의 소통을 도모합니다. 파출소도, 우체국도 마찬가지예요. 무엇보다 건축이 이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보면, 건축의 문화예술적 가치만 주장할 계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한국에선 22만5,941동(통계청)의 건물이 신축됐다. 설계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공기술자 등 투입된 인력과 시간, 돈만 따져도 어마어마하다. 20여만동 건물에 소요되는 설계와 시공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것은 역으로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시사한다. 박 교수는 건축이 “내수성장의 주인공”이라고 단언한다.

“흔히 항만, 도로, 댐 같은 토목이 경제를 좌지우지할 거라 생각하죠. 건축가들에게 토목과 건축의 산업규모 비중을 물어본 적 있습니다. 보통은 7대3, 어떤 건축가는 20대1 까지도 얘기하더군요. 실제로는 건축이 토목의 3배입니다. 건축가들도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 건축을 예술로, 인문학으로 취급해달란 얘기만 자꾸 합니다. 그러나 건축은 문화인 동시에 중요한 전략산업입니다.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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