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은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낸다. 아무리 폼 나는 최신 디자인 패션이라고 해도 결국은 면 농사와 양 사육, 부자재ㆍ섬유 제조, 염색 공정을 비롯한 전통적 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옷 한 벌을 만들 때 나오는 쓰레기와 이산화탄소, 사용되는 물의 양은 당장 눈에 안 띌 수 있다. 그러나 옷 생산량은 어마어마하고 생산 지역도 세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바다 너머에서 날아오는 미세 먼지와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는 빙하, 상승하는 해수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환경 문제는 한 나라 또는 한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패션 산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토 의정서와 파리 기후협약으로 이어지는 범국가적 노력에 동참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어차피 안고 가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시작하고 잘 하는 게 낫다. 대형 글로벌 회사들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담당하거나 정부 정책 대응을 맡는 부서를 만들어 로드맵을 제시했다. 또 옷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감소와 물 절약ㆍ재활용 등에 초점을 맞춘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ㆍ지속 가능한) 컬렉션’도 여러 브랜드에서 선보였다. 패스트 패션 매장에서는 재활용 옷 수거함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기업의 선의든 마케팅 수단이든 중요한 것은 어떤 실질적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느냐이다.
좀 더 큰 규모의 노력으로는 매년 열리는 ‘코펜하겐 패션 서미트(Summitㆍ정상회의)’가 있다. 올 5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서미트에는 패션 기업ㆍ비정부기구(NGO) 인사, 학자들이 모였다. 케링(구찌ㆍ퓨마 등의 본사), H&M, 타겟, 아디다스, 인디텍스(자라), VF 코퍼레이션(노스페이스ㆍ반스ㆍ이스트팩 등의 본사) 등 패션 기업과 소매 업체들도 참가했다. ‘2020년까지 순환적 패션 시스템을 완성하자’는 목표를 설정했고, 30여개 기업이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의 움직임 안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전통적 운동화는 천이나 가죽을 잘라 바느질로 연결했다. 최신 운동화 중에는 몸체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듯 보이거나 양말에 밑창을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제품이 있다. 가볍고 편안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기성 제품에 익숙한 눈으로 보자면 “이건 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키에 따르면 그렇게 생긴 대표적 모델인 ‘플라이니트’는 제작 과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보통 운동화에 비해 60% 줄었다고 한다.
패션 브랜드들은 친환경적 소재와 제조 방식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우리가 매일 입는 일상복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쓰레기가 덜 나오는 방향으로 디자인되고 소재나 봉제 방식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큰 문제가 생겼다.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교토 의정서의 진행 과정에서 보았듯, 주요 국가의 결정은 전 세계적 노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패션계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케링은 “새로운 프론티어(미개척지)는 바로 지속 가능성"이라면서 트럼프의 결정을 비난했다. 스포츠 브랜드 뉴 발란스 등도 가세했다. 다행히 나이키와 갭, 언더 아머 등 일부 미국 브랜드는 환경 개선 프로그램을 계속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큰 기업들에는 감시의 눈이 많다고 해도 수많은 중소업체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 같은 큰 나라엔 미래를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옷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배출되는 탄소 비중이 75%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25%는 옷을 세탁하고 고온 건조를 하거나 버리는 등 소비 과정에서 발생한다. 기업과 시민이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패션이 지속되려면 소비자인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잔뜩 있는 법이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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