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로 노를 젓는 패들링부터
일어나는 푸시, 테이크오프까지
해변서 충분히 연습 후 바다로
서핑동작은 물 흐르듯 이어져야
몸에 힘 빼야 균형 잡기가 쉬워
파도 타려면 5일 정도 교육 받아야
초보 중의 초보, 첫 파도를 맛보다
‘우리나라에 서핑할 파도가 있어?’
7만명 국내 서핑족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다. 강원도 양양과 충남 태안 만리포, 부산 송정, 제주 서귀포시 중문 등지의 해안 풍경은 우리가 알던 예전 모습이 아니다. 튜브를 탄 물놀이객이 채웠던 해변은 어느새 널빤지 같은 서핑보드 하나에 의지한 채 파도에 몸을 맡긴 서핑족으로 그득하다.
그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직접 부산 해운대구 송정 해변에서 서핑에 도전했다. 낮은 파도와 사계절 비교적 따뜻한 수온으로 대표적인 국내 서핑 명소이자 서핑 입문자의 천국으로 꼽히는 곳이다.
국내 서핑 인프라는 확실히 좋아졌다. 송정에는 서핑숍이 18곳이나 있다. 겨울에도 제주 다음으로 따뜻한 수온이 유지되고 장마철과 늦여름, 초가을에는 2m 이상의 높은 파도가 생기는 덕분이다. 송정 외에도 부산은 광안리 해변에 4곳, 다대포 해변에 3곳의 서핑숍이 있다.
하지만 34년 간 ‘숨쉬기 운동’만 하던 기자가 송정에서 사흘 간 서핑 체험으로 마주한 것은 ‘저질 몸뚱이’의 한계였다. 직접 강습에 나선 대한민국 1세대 여자 서퍼이자 베테랑 강사인 서미희(51) 송정 서핑학교 원장이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다.
1일차-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난 11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 송정 해변. 강습은 보드의 구조와 명칭, 안전수칙을 배우는 15분 가량의 실내 사전교육으로 시작됐다. 이날의 강사인 13년차 프로서퍼 김민우(25) 코치는 칠판에 그림까지 그리며 “보드는 항상 옆에 두고, 보드의 앞부분(노즈)은 파도와 수직으로 유지하며 한번의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전교육 후 키와 몸무게에 맞춰 웨트슈트(전신수영복)를 입는다. 바다 속에서 체온을 유지해 주고 자외선을 막아 주는 필수 아이템이다. 타게 될 서프보드는 길이 270㎝, 너비 60㎝ 가량의 롱보드지만 무게는 8㎏정도로 무겁지 않다. 서퍼와 보드를 이어주는 긴 끈인 ‘리쉬코드’를 받아 해변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해변에 도착하면 물속에 뛰어들기 전에 다시 모래 위 강습이 이어진다. 보드를 놓고 그 위에 엎드렸다. ‘해양 레포츠를 즐기는 30대 도시 남자’의 꿈은 일찌감치 깨졌다. 양팔을 바닷속에 넣어 노를 젓는 동작인 ‘패들링’부터 요가의 ‘코브라 동작’을 연상케 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 양손을 갈비뼈 부근에 대고 밀며 보드를 딛고 일어나는 자세(푸쉬, 테이크오프) 연습 만도 간단치가 않다. “웬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하는 코치의 질문에 애써 “원래 땀이 많다”고 대답할 밖에. 뽀송한 얼굴로 함께 교육을 받은 20대 연인의 얼굴이 야속하기만 하다.
드디어 입수. 이날 수온은 19도였고 파도는 0.2~0.3m 정도로 낮은 편이라 입문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가슴팍까지 물에 잠기는 깊이에서 보드 위에 올라 코브라 자세를 취했다. 5m쯤 뒤에 파도가 왔을 때 코치가 힘껏 보드를 밀며 “푸쉬”하고 외쳤다. 구령에 낑낑대며 일어나자마자 몸은 공중으로 치솟았고, 파도를 탄 서프보드만이 경주마처럼 해변을 향해 질주했다. 패장처럼 리쉬코드를 당겨 보드를 끌고 코치에게 향했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싶었다.
2일차-고난의 패들링
송정 해변은 둘째 날도 곁을 주지 않았다. 흐린 날씨와 바람 탓에 파도는 1.1m 정도로 높았다. 힘겨운 패들링이 시작됐다.
“이쪽으로 오라”고 외치는 서 코치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보드에 엎드려 팔을 저었다. 팔을 아무리 휘저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보드는 한 자리에 머물렀다. 어깨는 빠질 것 같고 기다리는 수강생들에게 민폐일 것 같아 보드에서 내려와 바닷속을 걸었다.
다른 수강생과 코치 가까이에 도착하자마자 좋은 파도가 왔다. 신난 코치가 다시 “패들링!”을 외치자 ‘잠시만… 잠시만…’이 머릿속을 맴돌건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코치가 보드를 힘껏 밀며 “더 세게 패들링!”을 외쳤다. 순간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이 떠오른다.
서핑은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패들링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일어나는 푸쉬, 테이크오프 동작에서 균형이 무너졌다. 힘찬 패들링은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고 테이크오프 동작에서 발을 딛고 일어서는 게 아니라 보드를 차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수 차례 바다에 떨어지길 반복해야 했다.
10분 휴식시간 전 마지막 코칭. 패들링, 푸쉬, 테이크오프 등 모든 동작을 잊고 몸에 힘을 빼기로 마음 먹었다. 단지 코치의 구령에 맞춰 균형을 잡으며 보드 위에 일어선다는 생각만 했다. “푸쉬”하는 코치의 외침이 들렸다.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엉거주춤한 자세이긴 했지만 마침내 보드 양 옆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예요!” 멀리서 작게 들려오는 코치의 칭찬이 귀에 ‘쏙’ 하고 꽂혔다. ‘그래, 이 맛에 서핑을 하는구나.’
3일차-10번 중 3번은 일어서다
눈을 뜨자마자 서핑이 떠오를 정도로 파도타기 매력에 흠뻑 빠졌다. 오후 3시쯤 파도는 첫날 교육과 비슷한 0.4m 높이로 낮은 편이었다. 초보자에겐 안정적이지만 숙련자에게는 아쉬운 높이다.
함께 바다에 나간 서 코치는 보드 위에 걸터앉아 파도가 오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드 중간에 걸터앉은 탓에 보드 앞부분이 살짝 들려있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이 말을 몰고 적진을 바라보는 장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방향전환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기자는 해변을 바라보고 엎드려 패들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거다”하는 서 코치의 외침에 맞춰 패들링을 시작했다. 서 코치는 분명 내 뒤에 있었는데 어느새 패들링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의욕이 과한 탓일까. 기자의 보드 앞부분이 물속에 잠기는가 싶더니 보드가 획 뒤집혀 버렸다. 서 코치는 강한 파도를 고르고 있었고 초보자인 기자는 그 속에서 균형을 잡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다행히 10번 중에 3번은 파도를 탈 수 있게 됐다. 서 코치는 “파도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5일 정도는 서핑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보드에 일어서려면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은 3일, 일반적으로는 최소 5일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교육시간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사흘 간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컸다. 서 코치는 “서핑은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신들의 놀이터이자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신들의 놀이터에 겨우 첫 발을 들인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만 파도 속에서 느낀 바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듯하다. 서핑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됐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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