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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개에게 산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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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개에게 산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입력
2017.06.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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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산책 가자"란 말만 들어도 쉽게 흥분할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는"산책 가자"란 말만 들어도 쉽게 흥분할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야 가자.”

이 한 마디면 반려견 찡이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벅찬 얼굴로 달려왔다. 순간적으로 직립보행이 가능해져 두 앞발을 들고 콩콩 뛰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저야 튀어나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휴지며 똥 봉투며 챙겨야 하는데 인간의 사정 따위는 알 바 없다. 책 편집자로서 출처도 알 수 없는 “어야 가자”는 말이 영 찜찜하지만 찡이가 알아들으면 그게 표준말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필요 없이 내가 산책용 줄만 쳐다봐도 산책 나가는 줄 알고 발동을 걸었다.

내가 산책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는 동안 대문 앞에서 메트로놈처럼 꼬리를 좌우로 탁탁 치며 기다리던 녀석은 문이 열리면 온 몸을 흔들며 ‘슝’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하는 산책인 것처럼, 마치 다시없을 마지막 산책인 것처럼 온몸으로 기쁨을 뿜어대며 걸었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길을 딱 하루 전에 걸었으면서도 말이다. 이처럼 순간을 만끽하는 생명체가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찡이와 나는 19년을 함께 걸었다.

요 며칠 사이 더워졌지만 그 동안의 날씨는 개와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거리에 개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런데 제대로 산책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개에게 목줄을 하지 않거나 똥 봉투를 들지 않은 기본적인 매너가 없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 새롭게 등장한 인간 유형이 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개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스마트폰에 빠져서 개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은 기본, 며칠 전에는 개가 길에 구토를 하는데도 앞서 걷는 주인은 알지도 못했다.

개에게 산책은 늑대가 무리 지어 사냥과 나가는 것과 같이 흥분되는 일이고, 다양한 개와 인간을 만나며 사회성을 키우고, 몸을 단련시키고,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다. 낯선 환경을 만나 새로운 학습과 경험도 하며 복잡한 인간 세상에서 사는 법도 배운다. 인간처럼 개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타고났고(물론 게으른 현대인은 그런 욕구를 잃어버렸지만), 무리와 이동하고픈 욕구 덕분에 개에게 걷기는 최고로 기본적인 활동이다.

때때로 자기 개에게 문제가 있다며 문의해 오는 분들이 있는데 많은 경우가 제대로 된 산책을 시키지 않고 있었다. 산책이 숙제인 것처럼 데리고 나가 대소변만 보고 휙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특히 활동량이 많은 비글, 슈나우저, 웰시코기 같은 견종에게 그런 산책은 운동화도 신기 전 “오늘 산책 끝!”이 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동물인지행동 전문가인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개는 몸에 코가 달린 게 아니라, 코에 몸이 붙어있다”고 표현한다. 그 정도로 개는 후각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동물이라는 뜻인데 산책 나온 개가 킁킁 냄새 좀 맡으려고 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줄을 당긴다. 냄새로 지나간 개의 정보도 얻고, 내 정보를 더하려는 개의 마음을 인간은 몰라주는 것이다.

후각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개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후각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개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개와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율이 5%나 낮다는 둥 개와의 산책이 인간에게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의 산책이 개의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개는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때로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개는 안다. 그런데 우리는 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산책조차 제대로 못 시킨다. 한참 모자란 인간과 살아 주는 개에게 고맙다고 해야 한다.

‘개의 마음’의 저자 이토 히로미는 셰퍼드 종 ‘다케’와 함께 살았다. 다케는 산책이라는 단어에 이성을 상실해서 죽기 살기로 설쳐댔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화분을 깨고… 순식간에 아비규환을 만드는 바람에 그의 집에서 ‘산책’은 금기어가 되어 ‘음’, ‘그거’ 등으로 바꿔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다케가 할머니 개가 되어서 산책을 하기 위해 차에서 내릴 때마다 나자빠지고, 몇 걸음 걷다가 철퍼덕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앞서 걸으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따라오는 다케. 개는 그런 존재이다. 저자는 그것을 ‘개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개는 순간을 살고, 사는 건 즐거운 거라고 온몸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삶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도. 개는 우리보다 삶의 속도가 빨라 언젠가 먼저 떠난다. 그러니 언젠가 미치도록 그리워질 오늘의 산책 시간을 스마트폰이나 보며 날려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개의 마음’, 이토 히로미, 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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