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재명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88’(이하 ‘응팔’)이다. ‘응팔’에서 학생주임이자 동룡(이동휘 분)의 아버지로 유쾌한 모습으로 주목 받았던 유재명은 사실 이전에 수많은 연극 무대에서 진중한 모습으로 연기력을 쌓아온 배우다. 다만 조-단역으로 짧게 출연해 ‘진짜 유재명’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이런 유재명이 최근 개봉한 영화 ‘하루’에서 처음으로 상업영화의 주연을 맡아 그동안의 연기 갈증을 해소했다. ‘하루’에서 그는 웃음기를 빼고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유재명이 출연한 ‘하루’는 매일 딸이 사고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준영(김명민 분)이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변요한 분)를 만나 그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지난 19일까지 62만 명(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개봉하기 전 ‘하루’는 기대작이 아니었다. 일명 ‘블록버스터’가 아닌데다가 소재마저 뻔한 타임루프에 부성애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유재명은 분량으로는 김명민, 변요한에 이어 세 번째, 역할로만 따지면 첫 번째로 중요한 인물이지만, 언론시사회 전까지 그의 정체가 베일에 꽁꽁 싸여 있었고, ‘하루’는 오로지 ‘김명민X변요한’의 영화로만 홍보가 됐다. 매번 봐오던 이야기이기에 관객들이 기대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는 유재명의 캐릭터를 통해 변주를 꾀한다. 그는 사건 해결의 열쇠이자 영화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조선호 감독 역시 유재명이 연기한 강식의 캐릭터를 가장 신경 써서 창조해야 했다. 강식이야말로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유재명이 맡은 강식은 영화 초반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준영과 민철이 어떻게 해도 하루를 바꿀 수 없단 사실에 절망했을 때 정체를 드러내 두 사람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준다.
통상적으로 ‘타임루프’라고 하면 시간을 돌려 누군가를 구출하고 아름다운 결말을 도출해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강식은 이 공식에 따르지 않는 인물이다. 누군가는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을 돌이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이는 똑같은 순간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유재명은 강식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중점을 둔 것에 대해 “강식의 감정을 관객들이 유추하고 그 사람의 아픔을 같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 것처럼 강식이 느끼는 고민은 관객들마저 함께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놀랍다. 물론 김명민과 변요한의 연기 역시 말할 필요 없이 좋지만 이들의 연기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었다면, 히든 캐릭터답게 유재명의 연기는 예상할 수 없었기에 더욱 놀라움을 준다.
유재명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영화의 흐름을 강식의 편으로 돌아서게 한다. 그의 첫 등장신은 얼굴을 가득 클로즈업한 신으로, 유재명은 온 근육을 이용해 얼굴을 꾸깃거리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하루’는 영화로서의 가치를 증명해 낸다.
강식 캐릭터는 모르고 가면 반전이자 유재명의 발견이다. 다만 단순히 뻔한 소재라서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예비 관객을 극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히든카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개봉 둘째 날까지 ‘미이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하루’는 주말 동안 뒤쳐져 2위로 물러났다가 현재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오는 21일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개봉하는 가운데 ‘하루’가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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