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루’는 매일 딸이 사고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 준영(김명민 분)과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변요한 분)이 만나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작품이다. 기존에 많이 봤던 타임루프 소재지만, ‘하루’는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풀어낸다. 배우 김명민 역시 식상한 부분을 어떻게 메워 나갈 것인지 고민했으나 그 고민은 촬영장에서 믿음으로 바뀌었고, 완성본을 본 지금은 자신감으로 변했다.
“기존 한국 타임루프 작품들에 실망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같은 소재였지만 잘 빠진 시나리오였고, 대본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희망이 보였다. 직접 촬영에 들어가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조선호 감독님은 신인답지 않게 현장 장악력이 좋았다. 가끔 현장에서 회의하시는 분도 있지 않나. 하지만 우리 감독님은 회의는 미리 하고 변수가 생기더라도 대처가 빨랐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내 믿음이 맞았구나 싶었다. 나는 내 영화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인데 너무 잘 나왔다. 90분이 되게 빨리 가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이었다. 지금까지의 타임루프 영화 중엔 수작으로 뽑힐 만하다.”
타임루프란 똑같은 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배우들은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배우들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라고 할 정도로 벗어나고 싶어 할 때쯤에야 겨우 그 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 물론 옮긴 장소도 또 한 번 지겨워질 때까지 머물러야 했다.
“똑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스태프에게 ‘내일 뭐 찍냐’고 물어보면 ‘내일 사고 나는 장면 찍는다’고 한다. ‘그럼 모레는 뭘 해?’라고 물어봤는데 또 사고 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엔 ‘정말 우리가 타임루프에 빠진 것 아니냐’ ‘얘 어제도 지금이랑 똑같은 표정 지었지 않냐’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웃음) 공항 신을 찍을 때는 폐쇄 공포증에 걸릴 것 같았다. 많은 여행객들과 섞여 산만한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도 힘들었다. 스태프가 나를 위로하면서 ‘지금은 괜찮은 거야. 우리에겐 박문여고 사거리가 남아있어’라고 하더라. ‘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러나’ 했더니 다른 데에서 5일 정도 있었다면 박문여고에서는 3주 정도 촬영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최근에 그쪽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부러 피해서 돌아갔다.”
이런 지루함은 다른 배우들보다 특히 김명민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루’에는 김명민 외에도 변요한과 유재명이 함께 극을 이끌어 가지만, 처음 한 달 정도는 다른 배우들 없이 김명민 혼자 촬영했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촬영하면서 “제발 배우들 좀 보고 싶다. 우리 영화엔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냐”고 하소연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히 한 달 후에 변요한과 유재명이 촬영장에 나타났고, 김명민은 “걔네들이 피 칠을 하고 누워있기만 해도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해 웃음을 자아냈다.
할리우드의 타임루프 영화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SF에 충실하게 로봇이 나타나거나 건물이 폭발하는 등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하루’에서는 큰 볼거리보다는 드라마적인 요소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외적인 것보다 연기로 영화 전체를 채워야 한다는 것은 ‘연기 본좌’ 김명민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솔직히 부담이긴 했다. 이 영화엔 연기 못하는 배우가 들어오면 큰일 난다 싶었다. 그래서 요한이에게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나는 아직 영악함이 떨어지나 보다.(웃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해야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읽을 때 그게 보이긴 하는데 이미 꽂힌 상태라서 어쩔 수 없다. 이 영화 역시 끝까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찍게 됐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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