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인구 100만 명의 작은 도시 러시아 첼랴빈스크를 찾았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한 이 곳은 한국의 프로야구 인기를 떠올릴 만큼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그에 앞선 대회 주최국인 멕시코에서는 암표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태권도가 종주국인 한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라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효자 종목이지만 우리는 ‘재미 없다’는 이유로 태권도를 외면하고 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뤘다는 평가 속에 네 번이나 연임하며 2021년까지 17년 간 장기 집권하게 된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가 한국인임에도 씁쓸한 현실이다.
그래서 오는 24일부터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여타 어느 종목의 안방 개최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태권도연맹에 따르면 이번 대회는 183개국에서 971명의 선수가 참가 등록을 마쳐 2009년 코펜하겐 대회 142개국 928명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게다가 세계 태권도의 성지를 표방하고 설립한 무주 태권도원 개원 이후 처음 열리는 국제대회다. 이렇게 소문난 잔치인데 자칫 저조한 흥행으로 국기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
마침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10년 만에 방한을 결정했다. 태권도는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전통 무예로 뿌리는 하나지만 남북의 두 갈래 태권도 역사는 분단의 현실과 닮았다. 한국이 주도하는 WTF의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인 반면 국제태권도연맹(ITF)은 북한이 주도하는 기구로 주로 구 공산권 국가가 가입해 있다. ITF는 고(故) 최홍희 장군이 1966년 대한태권도협회를 중심으로 창설했지만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ITF 본거지도 옮겨지게 됐고, 이에 따라 대한태권도협회는 독자적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평행선을 걷던 두 태권도는 비록 이벤트성이었지만 2015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 자리에 서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확연히 다른 두 태권도가 한 눈에 비교됐는데 WTF와 달리 북한 태권도는 주먹을 이용한 안면 가격이 허용되는 등 차력을 방불케 하는 과격한 동작으로 시선을 끌었다.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태권도는 재미없는 종목’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ITF 태권도를 보면 그 매력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인 기술과 동작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북한 태권도의 방한은 이번 대회 최상의 홍보ㆍ흥행 카드로 급부상한 것이다.
한민족이라는 공통 분모를 두고 있는 두 태권도는 당연히 통합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WTF는 기술통합을, ITF는 기구통합을 전제로 내세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첼랴빈스크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답보 상태였지만 이번 무주 재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통합 논의가 재개될지도 관심사다. 새 정부 들어 첫 남북 스포츠 교류이기에 더 기대가 크며 나아가 태권도가 그 물꼬를 터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신임 장관은 북한과 문화ㆍ체육 교류 및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디딤돌로 삼을 뜻을 보였다. 도 장관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체육 분야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역도 대회 등 교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서도 남북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도 장관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에게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협조를 구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하나의 뿌리로 탄생한 남북한 태권도의 화합이 지니는 상징성을 매개로 남북 체육 교류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호기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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