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에도 치적 없는 윤 전 장관
비주류지만 시대정신ㆍ상징성 갖춘 강 장관
문재인-강경화, 박근혜-윤병세보단 나을 것
19일 퇴임식을 가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별명은 ‘오병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만 아니었으면 임기 5년을 함께 했을 거라는 데서 붙여졌다. 대통령의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다. 서울대 출신의 그는 외시 합격 후 30년 동안 외무공직에 몸담아 온 정통 외교관료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는데도 박근혜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임기 중 치적이 뭔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1987년 5년제 단임 개헌 이후 최장수 외교부 장관이라는 기록이 무색하다. 그가 재임 중에 “3년을 하든 5년을 하든 외교나 국가발전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말 딱 그대로다. 외교 수장이라면 외교전략을 정교하게 짜서 대통령에게 진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오랜 외교 경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소신과 철학, 가치를 보인 적이 없다. “대통령 말 받아쓰기에 바쁘다”“지시사항만 이행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재임기간 중 한국 외교는 동네북이고 사면초가였다. 친미 외교를 고집하고 대북 제재 일변도와 북한 붕괴론에 집착해 외교 입지는 계속 좁아졌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하고 일본과는 단절상태로 치달았다. 복잡한 동북아 국제정치를 일차방정식의 단순 진영외교로 회귀시킨 결과다.
그런데도 그는 ‘자화자찬’만 쏟아 냈다. 미ㆍ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을 “양쪽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것은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했고 굴욕적 밀실 협상 비판을 받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는 “최선의 결과”라고 했다. 한미당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한 날 양복 수선을 위해 강남의 백화점을 들렀던 일화는 ‘무능외교’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강경화 신임 외교부 장관은 전임자에 비해 ‘스펙’에서 처진다. 비(非)고시, 비서울대에 여성이다. 서울대를 나온 외시 출신에 남성이 아니면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곳이 외교부다. 외무공직 대부분을 유엔에서 일해 국내적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딴섬 같은 처지다. 야당이 ‘총력 낙마’ 대상자로 삼고 집중포화를 퍼부은 것은 이런 ‘약한 고리’를 노린 것이다. 돋보기로 개미 들여다보듯 도덕성을 물고 늘어진 것도 그런 이유다.
딸의 고교 입학을 위한 위장 전입과 장관 지명 뒤 증여세 납부가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상습성과 고의성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이 정도 사안으로 낙마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윤 전 장관이 2013년 인사청문회에서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과 세금 탈루 의혹, 딸의 ‘가계곤란 장학금’ 수령 묵인, 교통법규 범칙금 미납 등이 도마에 올랐지만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여야합의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것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다.
강 장관이 북핵과 4강외교 경험이 없어 외교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전직 외교부 장관 10명이 “국제사회에서 검증된 인사”라며 그의 외교역량을 입증해 줬다. 성명에는 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등 보수ㆍ진보 정권을 망라한 모든 장관이 동참했다. 국정 전 분야를 통틀어 전직 장관들이 일제히 나서 후보자를 지지한 경우를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더 이상 확실한 보증이 있을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보수정권이 추진해 온 외교ㆍ안보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 강 장관 임명은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꼬여 있는 북핵 문제를 풀어내는 데 필요한 외교적 동력을 얻기 위한 포석이다. 유엔을 무대로 한 다자외교에 능한 강 장관을 통해 대외환경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 나라의 외교력은 국익을 중심에 둔 합리적인 정책 결정과 그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외교를 수립하는 데는 최고 결정권자의 이해와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외교의 길’, 2017).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문 대통령과 강 장관의 조합이 박근혜-윤병세 조합보다는 훨씬 유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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