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에 방점 다양한 행사 눈길
전국 독특한 동네서점 20곳 모여
고양이 책 전문 등 특화한 부스 인기
김훈 황석영 배수아 등 강연에
서민 등 인기작가가 맞춤 책 상담
저자-독자 자연스런 만남 호응 커
14~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 B1홀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주최 측이 추산한 하루 평균 관람객 수는 4만~5만명으로, 최종 방문자 수는 20만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예년의 두 배 수준이다. 도서전의 마지막 날인 18일엔 개장 시간부터 입구에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긴 줄에 포기하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번엔 입장권을 5,000원에 팔고 그걸로 다시 책을 살 수 있게 했어요. 관람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 밖에도 동네 서점들이나 작고 개성 있는 출판사들이 참여해 방문자들이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스를 꾸린 점이 호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올해 도서전의 홍보ㆍ기획을 맡은 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입구에서 떨어진 B1홀의 한 구석에 부스를 차리고 혼자 밀려드는 관람객들을 응대하는 중이었다. 김 대표는 “원래 이 시간에 B1홀은 텅텅 빈다”며 “방문자들의 흥미를 끌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매해 열리는 도서전이지만, 올해는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참석해 직접 책을 구매하면서 다시금 화제에 올랐다. 14일 개막식에 온 김 여사는 그림책 ‘분홍 몬스터’(노란상상) 등 책 4권을 구매한 뒤 “책 선물을 받으면 꼭 다 읽는다”며 “출판계 정상화에 힘 쓰겠다”는 말로 힘을 불어 넣었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전국의 동네서점 20곳을 모은 ‘서점의 시대’ 코너다.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강원 속초에서 61년째 운영 중인 ‘동아서점’, 통영 ‘봄날의 책방’ 등 지역 서점 외에도 고양이책을 전문으로 하는 ‘슈뢰딩거’, 음악 전문 ‘라이너노트’, 추리소설 전문 ‘미스터리 유니온’ 등 독특한 서점들이 한곳에 모였다. 주인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연남동의 ‘무인서점’은 역시 무인 부스로 운영됐다.
서점 주인들의 개성 있는 안목이 고스란히 반영된 책들에 독자들의 시선이 꽂혔다. 슈뢰딩거 부스 앞에서 책을 고르던 김성재(가명·20·학생)씨는 “금요일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소위 말하는 ‘덕후’들을 위한 책 천국이죠. 대형서점에는 자리가 없어서 못 들여놓는 고양이 책들을 여기서 다 볼 수 있으니까요. 각 서점 특색에 맞는 굿즈(특정 업계의 팬들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상품)들도 너무 예뻐서 그냥 구경만 해도 재미 있어요.”
텐트 모양 부스에서 유명 저자들로부터 책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독서 클리닉’도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됐다. 백승권, 서민, 김지은, 금정연, 은유 등 각계각층의 저자들이 독자들과 일대일로 만나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처방해줬다. ‘처방자’로 참여한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네 명의 독자와 만난 경험을 “책 읽는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계속 책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게 무엇보다 좋았어요. 이번 도서전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았어요.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팔까 혹은 싸게 살까가 아니라 나는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에 집중되는 분위기요.”
과거 도서전은 출판사들의 ‘창고 대방출’의 성격이 강했다. 이 때문에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출판계에선 도서전이 더 이상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김지은 평론가는 “오히려 긍정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예전엔 전집이나 학습지 대량 구매에 초점이 맞춰졌고, 행사장에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오는 관람객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니 사람들이 하는 말도 바뀌더라고요. ‘얼마예요?’ 대신 ‘우리 아이가 이런 데 관심이 있는데 어떤 책이 좋을까요’란 식으로 접근하는 거죠. 이번 도서전이 그런 움직임을 주도했다기 보다는, 근 몇 년간 동네 책방들이 만든 ‘나만의 문화 상품’으로서 책을 보는 태도가 올해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게 아닌가 합니다.”
이번 도서전에는 김훈, 황석영, 김탁환, 배수아 등 유명 작가들이 강연에 나서는 한편 부스에 깜짝 방문해 독자들과 만난 작가들도 있다. 17일 김탁환 작가가 북스피어 부스에서 책을 팔았고, 같은 날 이기호 작가도 마음산책 부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관람객들을 맞았다.
김홍민 대표는 독자와 작가 간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연도 좋지만 이렇게 가까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되겠어요. 도서전에서 독서에 대한 전통적 담론만 반복할 게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자리들을 만들면 독자는 자연히 따라올 거라 생각합니다.”
글ㆍ사진=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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