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이 직접 작성한 총 1,000여쪽 분량의 제보책자. 내용을 확인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진은 표절 의혹이 제기된 박모 교수에게 14일 사직권고 결정을 내렸다. 정반석 기자

서울대가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을 표절 당했다는 대학원생의 문제제기를 4년간 묵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학생이 작성한 총 1,000쪽 분량 제보책자를 확인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진은 동료인 박모 교수에게 14일 사직권고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해당 학과 대학원생 K씨는 1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4년간 홀로 싸우며 ‘영혼살해’를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과 2차 피해를 당했지만, 서울대 인권센터와 학과가 방치했다”는 것이다.

K씨는 2013년 3월 지도교수이던 박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당시 박 교수 수업교재에 자신이 2012년 8월 석사논문 연구계획서로 제출한 내용이 담긴 것을 발견했기 때문. 항의했지만 “네 착각일 뿐이다”는 대답만 들었다. K씨는 2013년 10월 서둘러 논문을 발표했지만, 박 교수도 두 달 후 유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K씨는 인권센터 등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표절 여부는 우리 관할이 아니다” “교수가 표절했다는 것은 당신 생각일 뿐이다” 등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도리어 K씨는 박 교수가 수업 도중 “K가 예민하니 신경 쓰지 말아라”고 말한 사실을 전해 들었고, 석사논문 발표회장에서 박 교수의 동료 교수가 20여분간 발표장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상황도 겪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 우울증과 대외기피증, 불면증이 생겨 학내외 심리상담센터를 전전했고, 지도교수도 두 차례나 바뀌었다.

서울대가 이번 표절 문제에 관심을 보인 건 3년이 흐른 지난해 12월이다. 박 교수가 2005년 국제비교한국학회의 학술지 ‘비교한국학’에 실은 논문이 표절을 이유로 취소됐음을 K씨가 제보했기 때문. 그러나 학과 비상대책위원회는 K씨가 대자보까지 붙이며 공론화한 올 3월에야 꾸려졌고, 그조차 교수들만 참여해 “자식이 아버지를 부정하냐” 식으로 논의 과정이 폐쇄적이었다는 게 대학원생들 주장이다.

결국 피해자인 K씨는 3월부터 3개월간 박 교수 논문 20건에 대한 대조작업을 실시, 1,000쪽 분량 논문표절 관련 자료집을 직접 만들어 학내 연구진실성위원회와 학과 교수진에게 보냈다. 14일 K씨 자료가 배포된 학과 교수회의에서 박 교수에 대한 사직권고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교수는 없었다. 참석한 한 교수는 “대부분이 표절로 보인다. 스스로 사직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조사 중인 박 교수 논문은 20건, 이중 3건은 이미 관련 학회에서 표절로 판명됐다. K씨처럼 박 교수에게 논문을 표절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시간강사나 연구원 등 교수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학교 측의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날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지난달 23일 동료교수진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K씨 논문과) 중복된 부분은 잘못을 인정하지만 논문계획서를 받기 전부터 같은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K씨에게 “명예훼손과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K씨는 “대학사회의 그릇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라며 법정투쟁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표절을 당했다며 서울대 대학원생이 작성한 대자보가 지난달 16일 서울대 인문대 광장에 붙여있다. 정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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