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중대범죄’를 사전계획만 해도 처벌하도록 한 ‘테러대책법안’(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해 일본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일본 국회 참의원은 전날부터 야권의 반대로 심야 대치 끝에 15일 아침 본회의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 및 우익성향 일본유신회의 찬성 다수로 법안을 가결했다. “국민 마음을 처벌하는 죄”란 반발에 부딪힌 이 법안은 지난해 2월 우리 국회에서 당시 야당의 거센 반발 속에 가결된 ‘테러방지법’과 유사하다.
일본 여권은 ‘공모죄 법안’으로 불리는 이 안건을 ‘중간보고’라는 형식으로 상임위 표결을 빼고 본회의에서 직접 논의하는 방식으로 강행 처리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때 국제 테러조직을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에 따른 것이다. 범죄를 계획단계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해 수사기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게 핵심이며, 대표적 범주는 테러나 약물, 인신매매, 사법방해, 불법 자금조달 등이다. 처벌대상인 ‘중대범죄’가 277개나 되는 등 지나치게 많은 데다 2명 이상이 범죄를 계획하고 그 가운데 적어도 1명이 자금조달 및 범행연습 등을 할 경우엔 범행계획에 가담한 사람 모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야권은 법 적용이 자의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데다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이전을 주장하거나 개헌에 반대하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를 탄압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1940년대 시인 윤동주를 체포해 감옥에서 숨지게 했던 제국주의 시대의 ‘치안유지법’과 비슷하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일본 여권이 법안처리를 서두른 것은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몰려있는 사학재단 특혜의혹 이슈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민진당의 야마노이 가즈노리(山井和則) 국회대책위원장은 “강행처리는 가케학원 의혹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고 성토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문제의 수의학과 신설에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담긴 문부과학성 문건관련 정부 조사결과가 나왔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문부과학장관은 가케학원 추가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민진당 등에서 제기한 19개 문서 중 14개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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