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고도화가 빚은 근본적 안보 불균형
당장은 美 ‘핵 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어
현실 직시해 사드 인식부터 바꿔 나가야
일본 자위대가 15일 지상 배치형 요격미사일 패트리어트(PAC)-3 전개훈련을 4개 자위대 기지ㆍ주둔지에서 실시했다. 4월 하순 총리관저에서 열린 ‘실전 도상훈련’에 이은 것이다. 니가타현을 비롯, 동해 건너로 북한을 마주한 4개현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상황을 가정한 주민 대피훈련도 잇따라 실시되고 있다.
이런 소식은 대개 ‘일본의 의도적 호들갑’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일본 보수파의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이나, 자위대의 역할 및 활동공간 확대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해석이 늘 따라붙는다. 일본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해 온 오랜 버릇, 날로 현실성을 띠어가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도 무덤덤한 우리 인식에 비추면,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일의 인식 차이는 꽤 오래 됐다. 짧게 봐도 1998년 8월31일 이래의 일이다.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진 그날 이후 일본의 지인들은 “한국은 어찌 그리 평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거듭했다. 오랫동안 “한반도는 전장(戰場)의 종심이 짧아 북한의 미사일 전력보다는 ‘서울 불바다’ 위협의 핵심인 장사정포나 다연장로켓포가 더 위협적”이라는 등의 판에 박힌 대답을 반복했다. 북핵에 대해서도 “북한의 최후의 방어수단이거나 전쟁억지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이후 그런 대답이 부끄러워졌다. 지난해 북한은 1월 풍계리에서 지하 핵실험(6~10kt급)을 성공한 데 이어 6월22일 수직에 가까운 고각(高角)으로 중거리탄도탄을 발사, 고도 1,400km까지 올렸다. 이를 두고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 진위를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 7월8일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가 전격 결정됐고, 올 4월에는 X밴드 레이더를 포함한 1개 포대(발사대 6기)가 반입됐다. 무엇보다 북한이 지난해 9월의 5차 핵실험(10~20kt)에 이어 올 들어 한 달이 멀다 하고 중장거리탄도탄(IRBM) 시험 발사, 급속한 기술 발전을 과시했으니 더 이상 따질 이유도 없었다.
잠수함 발사탄도탄(SLBM)과 그 지상형인 ‘북극성 2형’, 무수단 개량형인 ‘화성 12호’ 등 장거리 핵 투발 수단 개발에 공을 들이는 북한에 더는 ‘자위’나 ‘억지’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 약소국 특유의 안보방책인 ‘고슴도치 전략’의 극단적 형태로도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본격적 핵 경쟁에 나섰다고도 볼 수 없다. 미국과의 오랜 핵 경쟁 끝에 구 소련 체제 자체가 붕괴한 러시아에 비해도 북한의 국력은 너무 보잘것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은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증파, 1차적으로 일본 및 괌 주둔미군, 그 다음으로 하와이와 미 본토 주둔 미군의 증파를 제약하려는 뜻이다. 또 한국의 유일한 북핵 대응책인 미국의 핵우산, 즉 미국의 핵 보복능력에 구멍을 내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최후의 표적이 우리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태연하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핵무장 단계여서, 재래식 전력 증강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이런 근본적 안보 불균형이 발본적 안보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데도 우리 대응은 더디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자주국방론’이 좋은 예다. 대미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의 안보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오랜 꿈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한정된 자주국방론’으로 고쳐 마땅하다.
사드에 대한 정부와 국민 절반의 불투명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이른바 ‘발사대 추가도입 보고 누락’ 사건은 한동안 잠잠했던 사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을 ‘보고 누락’을 문제 삼아, 새 정부의 사드 거부감만 드러냈다.
국가안보란 애초에 극히 낮은 확률의, 좌고우면을 불허하는 사태에 대비하려는 것임을, 늦게나마 우리 모두가 뇌리에 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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