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기부채납’ 시한 지나
이영준·호경필씨 등 산악인들
산장 살리기에 발벗고 나서
“등록문화재 지정” 요청하고
역사 등 담은 책 발간하기도
국내 첫 민간 산장으로 93년 역사를 간직한 북한산 ‘백운산장’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전국의 산악인들이 나섰다.
백운산장이 국유지인 북한산국립공원에 지은 불법건물이라며 건물을 헐거나, 건물은 놔 두어도 지금처럼 개인 운영시설로 둘 수 없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입장에 반기를 든 것이다.
산악인들의 바람은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836m)와 인수봉(해발 804m)을 오르기 전 마지막 안식처인 백운산장(해발 650m)을 3대째 운영하는 이영구(86)·김금자(77) 부부가 계속 산장을 운영하며 머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영준(40) ㈔한국산악회 이사는 백운산장 보존에 대해 “대한민국의 첫 산장을 지키려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힘줘 말했다. 이 이사는 “국내 등산인구가 최대 1,50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번 문제는 국내 산악인들의 산악문화를 인정해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했다.
백운산장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산장을 운영하는 이씨의 증조부인 고 이해문 옹이 터를 잡았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고 이남수 옹이 1933년 건축허가를 받아 산장을 석조건물로 신축하며 뿌리를 내렸다.
이씨는 15세가 되던 1946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장에 터를 잡고 61년째 살고 있다. 이씨가 1964년 부인 김씨와 결혼식을 올린 곳도, 5남매를 길러 모두 출가시킨 곳도 산장이다. 30년 전부터는 장남 이건(52)씨가 주말마다 산장에서 부모를 도우며 4대째 산장지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 사이 산장은 1992년 등산객의 실화로 지붕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산악인들이 직접 자재를 짊어 나르며 직접 공사를 도운 끝에 1997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때 이씨로부터 산장을 20년 후 기부채납을 하겠다는 약정을 받았다. 그 시한이 바로 지난달이다.
기부채납 시한 만료 소식에 산악인 1만명은 백운산장이 헐리지 않도록 산장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또 국내외 산악문화 정보 교류와 산악 관련 문헌을 출판하는 한국산서회는 지난달 말 ‘백운산장 이야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 소책자에는 백운산장의 그간 역사와 의미, 보존 이유 등이 각종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초판 3,000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려 현재 재판을 인쇄 준비 중인 이 책의 판매 수익금(1권당 1,000원)은 백운산장 보존활동에 쓰인다. 호경필(56) 한국산서회 부회장은 “산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산서회가 백운산장 보존을 위해 힘을 보태기 위해 책을 냈다”고 했다.
산악인들 반대로 백운산장의 기부채납 과정은 잠시 중단된 상태다. 이씨 부부는 산장에서 ‘불법’으로 머물고 있고, 공단은 이들을 강제 퇴거시키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씨 부부가 시설 기부채납에 계속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명도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이사는 “백운산장이 등록문화재가 되려면 산장부지의 토지주인 환경부가 우선 동의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명도소송을 걸어오면 이씨 부부 대신 산악인들(백운산장 보존대책 위원회)이 대신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산악인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백운산장을 단순히 국수나 음료를 팔며 한 가족이 오래 운영한 산 속 가게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1971년 7명이 사망한 인수봉 참사를 비롯해 주변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백운산장은 구조본부로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산장지기 이씨가 지금까지 구조해 살린 등산객만 100명이 넘습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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