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이플래폼
업체 300곳 방문해 데이터 구축
건축가 135명과 건축주 무료 매칭
#2 디자인후스
50여명 작업사진-글 한곳에
건축가 전시장 느낌의 홈페이지
#3 하우스스타일
특이한 집보다 살 집 위주로
건축가 24명이 표준설계 제시
건축가의 이름이 대중에 회자되는 때는 언제일까.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했을 때? 조민석씨가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 아니면 김수근씨의 대표작 공간 사옥이 경매에 넘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서울시청 신청사 건축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에서는 개관식에 건축가의 자리가 없어 간이의자에 앉으려는 건축가 유걸씨의 모습이 나온다. 그마저도 제지하려는 진행요원에게 원로 건축가는 호소한다. “내가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건축가의 이름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건축이 문화가 아니라 산업이라 그렇다. 이는 고스란히 건축주의 손해로 이어진다. 땅콩집 이후 시작된 단독주택 열풍은 크든 작든 ‘마당 있는 내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끊임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내 집을 짓겠다고 나선 이들을 기다리는 건 정보의 지옥이다. 내가 가진 예산 안에서 내 마음에 꼭 맞는 집을 지어줄 건축가를 만나는 건 꿈 같은 일이고, 건축가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지인의 소개나 매체에 이름이 오른 건축가를 택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데, 그 때문에 전원주택 촌에는 건축가 한 사람이 한 블록의 집 전체를 설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금 국내 건축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신이에요. 건축주는 건축가를 못 믿고 건축가도 건축주를 못 믿어요. 시공사도 마찬가지죠. 수십 년간 쌓인 문제입니다.”
에이플래폼(a-platform.co.kr)의 김형래 대표의 말이다. 에이플래폼은 지난해 말 오픈한 온ㆍ프라인 건축 플랫폼이다. 건축가들과 관련된 데이터를 구축하고 건축주들이 상담 신청을 하면 적절한 건축가를 매칭시켜 준다. 비용은 무료다. 김 대표는 “중개소와 플랫폼이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개 서비스는 건축주와 건축가 양측으로부터 소정의 소개비를 받습니다. 당장 수익을 창출하긴 좋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의 파이를 나누는 거예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 대표는 애초 “건축주가 아닌 건축가를 위해” 에이플래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각각의 사상이나 흐름을 주도하는 건축가가 있었어요. 지금은 거대 담론이 아닌 지역 단위의 소규모 담론이 중요해졌어요. 소위 ‘동네 건축가’의 시대가 온 거예요. 이들을 어떻게 건축주에게 알릴 것인가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플랫폼을 시작할 당시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건축사무소의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를 보고 마음에 쏙 든 업체를 발견하고 검색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주소지가 아홉 번이나 바뀌어 있었다. 알고 보니 신고와 폐업을 반복한 회사였던 것. “건축가인 나도 속는데 보통 사람들은 꼼짝 없이 당하겠구나 싶었어요. 건축가들을 일일이 다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건축사무소는 9,800여 곳, 자격증이 없는 곳까지 포함하면 1만5,000여 곳이다. 그 중 7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작년부터 300곳 넘는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현장도 다 찾아갔고 건축주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건축계가 좁고 소문이 빨라 그 덕을 보기도 해요. 믿을 만한 건축가를 추천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현재 에이플래폼의 파트너 건축가는 135명이다. 그 중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도 있지만 아예 포트폴리오조차 없는 신진 건축가도 있다. “만나본 건축가 중 동네 주민들 노후주택을 고쳐주는 일을 하는 분이 있었어요. 실력은 좋은데 번듯한 주택을 짓지 않으니 포트폴리오가 없는 거죠. 에이플래폼이 하는 일 중엔 이런 건축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줄 순 없어도 이 건축가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이런 일을 한다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거죠. 스토리의 힘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수익 없이 돌아가는 사업은 없다. 김 대표는 건축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건축가 브랜딩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짓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건축주예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0, 30년 간 잠재적 건축주로 머물 수도 있죠. 그들이 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이는 돈과 시간이 상당합니다. 건축가들이 가진 정보, 좋은 시공업체와 자재회사도 다 자산이에요. 저희는 여기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이를 쪼개는 것보다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거죠.”
에이플래폼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축가와 건축주를 연결시켜준다면, 디자인후스(designwhos.com)는 여기서 한 발 뒤로 물러난 ‘건축가 전시장’ 느낌이다. 건축을 비롯해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등 디자인 전반을 다루는 디자인후스는 2015년 건축사진작가 김재윤씨가 시작했다. 김 대표는 “(건축가와 건축주를) 연결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디자인이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저희 기준에 훌륭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한 곳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현재 디자인후스에 참여하는 건축가는 40, 50명 정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참여 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 사진이 있고 그것을 누르면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업물에 대해 쓴 글과 홈페이지, 그들의 다른 작업들을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를 “백화점에 입점한 매장”에 비유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백화점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수준’을 가늠하는 저희의 기준 중 하나는 건축가가 자신의 작업을 작품으로 여기는가 입니다. 자신의 작업에 애정을 갖고 그걸 전문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가 곧 건축주와 더 가까이 소통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고급 건축보다는 올바른 건축 문화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수익 창출에 대해 김 대표도 당장의 수익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건축 플랫폼을 표방하는 곳 중 오래가지 못하는 곳이 많아요. 수익부터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백화점이 잘 되면 그 주변도 활성화되게 마련이에요. 시공사나 자재업체 등이 일이 많아지겠죠. 자재업체 광고 등을 통해 추후 자연스럽게 수익이 발생할 거라 보고 있습니다.”
작품 같은 집을 원하는 건축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건축주도 있다. 올해 5년 차에 접어든 하우스스타일(hausstyle.co.kr)은 일반인이 ‘건축가가 지은 집’에 더 쉽게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김주원 대표가 설립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특이한 집을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 많지 않아요. 게다가 원하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어요. 저희는 표준 설계안을 기반으로 작업합니다.”
하우스스타일이 만든 리빙큐브는 참여 건축가 24인으로부터 받은 표준설계 도면안이다. 건축주들이 50여 개의 리빙큐브 중 선택하면 각자의 사정에 맞게 조금씩 변형해 집을 지어준다. 계약이 이루어진 도면에 대해선 건축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건축주와의 상담부터 시공사 섭외, 완공, 그 이후 서비스까지 설계사무소가 할 일은 하우스스타일이 맡아서 한다. 추천에서 불거질 수 있는 원성이 없고, 책임 소재가 뚜렷하기 때문에 잡음이 나올 여지가 적다. 지난 5년 간 하우스스타일을 통해 지어진 집은 70채가 넘는다.
“보통 1억5,000만~2억5,000만원의 예산을 가진 분들에겐 리빙큐브가 적합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천창이나 중정 등 비슷합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건 ‘삶을 담는 집’이 아니라 건축주가 ‘이만하면 됐다’는 집이에요.”
김 대표는 최근 벽지나 마감재 등 건축자재들을 한 곳에 망라한 에이치랩(H-lab)을 오픈했다. 시공사와 건축가를 위한 일종의 ‘자재 도서관’이지만 건축주를 위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인테리어는 특히 시장 정보에 밝아야 해요. 의외로 여기에 무지한 건축가가 많습니다. 시공사와 건축가가 여기서 자재 샘플을 보며 회의할 수도 있고, 건축주가 아예 저희에게 인테리어를 맡길 수도 있죠.”
다양한 건축 플랫폼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건축시장의 양성화다.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인심’이나 ‘서비스’란 이름으로 공짜나 헐값으로 거래됐던 정보들이 데이터란 이름으로 시장에서 적정가를 합의하는 과정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물론 플랫폼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김주원 대표는 “건축계의 잘못된 관행 때문에 평당 시공비 300만~400만원에 세뇌된 건축주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한다. “불신이란 단어가 건축 시장 전반에 깔려 있는 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서 ‘아무도 못 믿으니 나만 믿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죠. 남의 작업에 제대로 된 가치를 지불하는 문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건축가, 건축주, 시공사 모두에게 필요한 때예요.”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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