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싸인]이라 발음하고 ‘사인’이라 적는 말은 이른바 ‘콩글리시’이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signature’나 ‘autograph’라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명’(署名)이라는 말이 우리 사전에 버젓이 있으니 굳이 ‘사인’이라 이를 이유가 없다.
‘서명’ 대신 ‘사인’이라는 외래어를 쓰다 보니 이 행동을 흔히 ‘영문자’라 일컫는 로마자(라틴자)로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러면서도 매우 흘겨 써서 철자를 알아보기 어렵거나, 아예 그림이나 문양을 써넣는 분들도 있다(그림이나 문양에 가까운 것은 옛날의 ‘수결’(手決)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아마도 서명 문화가 근대화 이후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온 탓, 서양인의 필기체가 당시 우리로서는 알아보기 어려웠던 탓이 아닐까 싶다. 신용카드 결제 서명과 같이 아주 자주 사용하는 서명에 있어 어떤 이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살짝 구부러진 선 하나 둘 정도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위조가 쉽기 때문에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본인 책임도 일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서명은 말 그대로 자기의 이름을 써넣는 행동이다. 왜 써넣을까? 남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필적 감정 전문가에 따르면 아무리 정자를 흉내 내도 특유의 각도, 압력, 획순, 간격 등을 똑같이 본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니, 위조에 대한 불안감은 잊어도 좋을 듯하다.
인감 대신 서명을 사용하는 근거가 되는 법률인 본인서명사실 확인 등에 관한 법률(2012년 제정)에도 서명이란 “본인 고유의 필체로 자신의 성명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기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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