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정부부처들이 재정당국(기획재정부)에 요구한 내년 예산ㆍ기금 총지출액이 424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6.0%(23조9,000억원) 늘어났다. 예산 요구액으론 최근 3년 사이 가장 높은 증가폭인데, 특히 취약계층 지원 등 복지분야 예산이 확충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 중심’ 경제성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대신 주로 시설에 투자하는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등은 예산 요구 규모부터 크게 줄었다.
기재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18년도 예산 요구 현황’을 12일 발표했다. 예산은 올해 대비 7.2%(19조9,000억원) 증가한 294억6,000억원, 기금은 3.2%(4조원) 증가한 12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6.0%의 내년 예산 요구액 증가율은 지난 2014년, ‘2015년 예산’을 요구할 때의 증가율(6.0%)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예산 요구액 증가율은 2012년 7.6%, 2013년 6.5% 등 6~7% 수준을 유지했으나, 2016년(4.1%)과 2017년(3.0%)에는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이를 ‘확장예산’이라 자평했지만 전문가들은 지출 증가액이 경상성장률에도 못 미쳐 ‘긴축예산’에 가깝다고 평가한 바 있다.
내년 예산에서 요구액이 크게 늘어난 부문을 보면 주로 ‘사람’에 대한 투자 쪽이 눈에 띈다. 우선 보건ㆍ복지ㆍ고용 분야 예산 요구액은 올해 예산 대비 8.9% 늘어난 141조1,000억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 노인기초연금 인상(20만→25만원), 0~5세 아동수당 신설(10만원),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완화 등에 따른 예산 요구가 반영됐다.
국방 분야에서도 사병 월급 인상(병장 기준 21만→40만원) 등 장병 처우 개선 관련 예산이 담겼다. 전체 국방 예산 요구액은 8.4% 증액된 43조7,000억원 규모다. 또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증가하면서 교육 관련 예산 요구액도 올해 예산보디 7.0%나 늘었다.
반면 SOC 분야는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해 대비 15.5% 줄어든 18조7,000억원으로, 그 동안 인프라가 축적된 도로, 철도 분야 예산이 감소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나 경제성이 없는 토목사업은 과감히 줄이겠다는 취지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시설지원 사업이 완료되면서 문화 관련 예산 요구액도 5.0% 줄었다. 상ㆍ하수도 시설 사업의 규모가 조정되면서 환경 예산도 3.9% 감소했다.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은 앞으로 기재부와 국회라는 큰 산을 두 번 넘어야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재정확대를 토대로 한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실제 내년 예산은 경상성장률(4% 내외)을 훌쩍 뛰어넘는 ‘확장예산’ 수준으로 편성될 전망이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경제부처와 함께 노동정책을 책임지는 노동부, 복지부 등이 삼각편대를 이뤄 선순환의 경제성장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사회부처에 힘을 실어줬다.
기재부도 예산심의 과정에서 새 정부의 구상대로 단계적인 복지 확대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새 정부 기조를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각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2018년 정부 예산안을 편성해 국무회의 의결 후 9월 1일까지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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