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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림피아의 결정

입력
2017.06.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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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영어로 ‘The end justifies the means’로 정관사 the와 단ㆍ복수명사의 활용법을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대학입시 본고사가 있던 시절 영어작문 시험에 자주 등장했던 구절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관통하는 통치기술로 비판적으로 인용되곤 했지만, 여기서는 ‘좋은 목적일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군부정권 시절에는 과격 폭력 사태에 대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가 동원되기도 했다. 특정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적정성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의로운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혼란스럽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목적에 동원되는 실질적 수단이 국민 세금이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역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고용할당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도 기업이나 노동계의 양보를 기반으로 한다. 또 휴대전화 기본료 폐지라는 공약 달성을 위해 통신사를 압박하는 것은 시장논리와 거리가 멀다. 이들 말고도 앞으로 세금을 투입하거나 노동계의 동의, 사회적 합의 등이 수반되어야 할 공약이 수두룩하다.

▦ 대통령의 리더십은 통상 최고경영자(CEO) 리더십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CEO는 자기 의사대로 일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대통령은 늘 반대파가 존재한다. 따라서 참을성과 포용성,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협상력을 가져야 한다. 또 CEO는 승진 보너스 좌천 해고 꼼수 등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의회 언론 권력기관 등 다양한 견제세력을 통제하려면 국민의 대폭적 지지를 등에 업어야 한다(이정전의 <시장은 정의로운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얻지 못하면 리더십도 실종된다는 얘기다.

▦ 문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장관 후보자 청문회, 각종 공약추진, 추경 등에서 별 진척이 없다. 12일 대통령 시정연설은 진정성으로 가득했지만, 결과는 낙관하기 어렵다. 낡은 제도와 관행, 현실 등이 발목을 잡는 탓이다. 유명 경영학자 게리 해멀은 “최고 권력을 가진 관리자들은 일선의 현실과 가장 동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올림피아 꼭대기에서 내린 결정은 땅 위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속도를 내려면 속도를 줄이라고 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통합할 시간이 필요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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