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A씨는 얼마 전 큰 좌절감에 빠졌다. 결혼 당시 남편에게는 이미 전처와 낳은 아들이 있었고, A씨는 행여 ‘새엄마’ 소리를 들을까, ‘차별한다’고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 제 자식 낳는 것도 포기했다. 30년 넘도록 금이야 옥이야 기른 아들이 얼마 전 실직하며 A씨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며느리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친시모가 아니라 계시모라서 안 된다”는 이유였다. 지난 30년의 세월이 무상해지는 순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보수나 소득이 없는 배우자의 계부모, 이혼한 형제자매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부양요건을 개정하라고 12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미 2006년과 2014년 총 4차례에 걸쳐 혼인여부나 계부모 여부가 아닌 경제적 능력 유무에 따라 피부양자 인정여부가 결정될 수 있도록 해당 법령 개정을 권고했으나 보건복지부장관은 모두 불수용했다.
앞서 A씨를 비롯한 진정인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형제자매는 직장가입자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반면, 혼인 경력(이혼 사별 등)이 있는 형제자매나 계시부모, 계형제자매는 불가능한 것은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적용인구의 약 40%(2천만명) 이상이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서 보험료를 내지 않고 보험급여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피부양자 대상을 최소화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결혼경력 있는 형제자매에게 일률적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혼인여부를 이유로 하는 차별행위”이며 “배우자의 계부모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가족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계형제자매의 경우, 나라마다 여건에 따라 의료보장제도 형태가 다르고 국가 재원 확보 방법에 따라 건강보험 가입자격과 피부양자 인정범위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 사회적 합의에 따른 국회 입법사항이라며 각하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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