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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차 대지 마라” 주차장마저 독차지한 노조

입력
2017.06.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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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노조도 변해야 한다] (상) 그들만의 노조

노조원 자녀에 채용 가산점 등

정규직이 쌓아 놓은 ‘특권의 벽’

내부 이기주의 허물어야

노동절(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달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017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기자
노동절(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달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017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기자

“회사 소유 시설 사용, 학자금 등 복지 개선에 관해 단체협상에서 함께 제시해보자고 수년 째 정규직 노조에 이야기해도 요구안에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란 여덟 글자로 올라갈 뿐이에요. 결국 실현되는 건 아무 것도 없죠.” (대기업 비정규직 근로자 A씨)

“노조가 하청업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솔직히 임금 인상이나 복지 개선 만도 사측에게 온전히 관철시키기 어려운데 거기까지 신경 써줄 여력이 있겠습니까.” (대기업 노조 임원 출신 B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축소,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공약들에 하나 둘 시동이 걸리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경영자들의 전향적 자세가 가장 먼저 요구되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내부의 벽’이 있다. 노동자들 권리 신장의 선봉에 서왔지만 이제는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특권 계층이 돼버린 ‘노동조합’이다. 30년 전인 1987년 6ㆍ10 민주항쟁의 바람을 타고 현재의 기틀을 잡은 노조운동이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규직 노조에 대해 가장 벽을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사측이 아니라, 그들보다 하위계층으로 굳어진 비정규직이다. 지방의 한 대기업 공장 사내하청 근로자 C씨는 공장 밖 주차장에 차를 대고 회사로 걸어서 출근한다. 공장 내 주차장은 오직 정규직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C씨는 “차 댈 곳이 부족해 공장 인근에 차를 대다가 주차 위반 딱지를 떼는 동료들이 허다하다”며 “하청업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처우 개선 문제들은 정규직 노조와 함께 제기하고 싶지만 노조 측은 하청은 법적으로 독립된 회사라고 선을 그어 적극적으로 나서길 꺼린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3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매달 모여 사측에 건의할 사항 등을 논의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화됐다. 기아차노조가 지난 4월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하는 총투표를 강행하고 분리를 확정했을 때 이를 반대했던 하상수 기아차노조 전 위원장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조 주체로서 둘 다 같은 노동자”라며 “특히 비정규직은 사측의 탄압을 저지하고 권리를 높이기 위해 정규직과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상황에서 노조원 자녀에 대한 채용 가산점을 요구하는 노조가 전체 사업체 4곳 중 1곳에 이르는 현실도 노조의 이기주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11일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3월 노조가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2,769개 단체협약 중 25.1%인 694개가 위법사항인 ‘우선ㆍ특별채용 단체협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0인 미만 기업(20.4%)보다 1,0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위반율은 35.1%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우선ㆍ특별채용’은 결원이 생겼을 때 장기근속자, 정년퇴직자의 자녀 등 조합이 추천하는 자(채용 요건 부합 조건)를 우선 채용하는 ‘고용세습’ 제도로 고용정책기본법 등에 위배된다. 심지어 지난 2월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발탁 채용을 빌미로 비정규직 123명으로부터 8억원 가량을 챙긴 한국GM 전ㆍ현직 노조 간부 17명이 적발돼 타락한 노조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노동자 출신 심상정 정의당 대표조차도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자녀에게 고용승계를 하거나 취업장사를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며 특혜는 없어야 한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문제도 간접적으로 노조 문제와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절반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5년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 대비 62.0%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낮았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54.5%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충남연구원이 1999~2014년 19개 제조업 중분류 산업의 패널 자료를 활용해 작성한 ‘위탁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 영향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위탁대기업의 임금 상승이 납품생산물의 구매비용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혜경 연구위원은 “고용 보호 수준이 높은 위탁대기업의 임금 상승은 결국 협력중소기업의 근로자 임금 하락을 유발해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으면서 납품단가 인상에 인색한 대기업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노조라도 하청업체의 환경도 고려하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대기업 노사는 임단협에서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20% 정도에 그친다.

노조 활동이 사회적 책임을 뒤로한 채 이기주의로 흐르면서 노조의 저변 확대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비정규직 노조 가입의향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 의향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유노조 사업장에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 의향’을 조사한 결과, 정규직은 2007년 20.4%에서 2014년 12.0%로 떨어졌고 비정규직 역시 2007년 49.3%에서 2014년 30.5%로 크게 감소했다.

결국 해법은 노조 스스로 약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대승적 결단이라는 지적이다. 트럭ㆍ트랙터 등 상용차 제조업체인 타타대우상용차의 정규직 노조는 2008년 기존 노조에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가입시켰다. 2003년부터 시작된 기술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의 가세 이후 늘어났고 2009년에는 업계 최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동일한 임금 인상폭, 성과급 지급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 모두에게 기본급 3만5,000원 인상, 성과급 ‘350%(통상임금 기준)+200만원’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단체협약을 이뤄냈다. 타타대우상용차 관계자는 “노조의 추진 속에 지난 4월 1일자로 마지막 남은 기술직 비정규직 35명이 정규직 전환되면서 기술직 비정규직 전원이 정규직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 역시 단체협약을 통해 2008년부터 매년 비정규직 인원의 1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 정부의 정책 준비 과정에서 노조는 고용과 임금 등 경제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라 원ㆍ하청 관계 구조, 공정 거래 질서 등 사회 개혁 의제의 중요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라며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끼리 나눠 갖는다는 ‘양보론’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노동개혁이라는 큰 지향점을 가지고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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