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기 고장에 결혼식ㆍ돌잔치도 차질
쇼핑몰은 아수라장, 영화관은 환불 소동
이번에도 안전처 등 당국 늑장 대응 도마
한전 “약 19만 가구 피해 예상” “변전소 전기공급 선로 이상”
휴일 대낮 서울 서남부 지역과 경기 광명 일대가 대규모 정전사태로 대혼란에 빠졌다. 2시간 넘게 일상이 마비되기도 했다. 암흑으로 변한 백화점과 쇼핑몰은 아수라장이 됐고, 승강기에 갇힌 시민들이 구조를 요청하는가 하면, 영화관 등에선 환불 소동이, 결혼식과 돌잔치는 차질을 빚었다. 교통신호등이 꺼졌고, 물이 끊긴 지역도 있었다. 이번에도 당국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11일 국민안전처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53분부터 서울 구로ㆍ금천ㆍ관악구와 경기 광명ㆍ시흥시 등에 대규모 정전사태(피해 약 19만 가구 추정)가 발생했다. 한국전력은 전력을 우회 공급하는 방식으로 오후 1시15분쯤 복구 완료했다고 밝혔으나, 정전으로 인한 불편을 2시간 넘게 호소하는 지역도 있었다. “일부 건물이 별도 전기설비를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게다가 정전 안내 문자를 보낸 시점이 안전처는 오후 1시39분쯤, 광명시청은 오후 1시29분쯤으로 한전이 밝힌 복구 시점(1시15분)보다 느려 빈축을 샀다.
인파가 몰린 백화점과 쇼핑몰 이용객은 공포에 떨었다. 시민들은 제대로 된 안내방송도 없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 등을 걸어서 건물을 빠져 나왔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모(20)씨는 “갑자기 암흑이 되자 3~4초간 사람들끼리 부딪히기도 했고 여기저기 비명소리도 나왔다”고 전했다. 일부 시민은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가까이 이 건물 엘리베이터에 갇혀 119구조를 요청했다. 구조 작업이 지연되면서 60대 여성 1명과 40대 남성 1명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구조 요청만 이날 서울에서만 80건이 넘는다. 주차장 차단기가 열리지 않아 지하에 20분 넘게 갇힌 운전자들도 있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과 돌잔치 등을 망친 시민들도 있었다. 신림역 근처 쇼핑몰에서 장사를 하는 김모(31)씨는 “1시쯤 이웃해 있는 돌잔치 행사장에서 10분간 정전이 일어나 아기도 울고 손님도 대피했다”고 밝혔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건물 내 웨딩홀에서 오후 1시 열릴 예정이던 예식도 차질을 빚었다.
소형 상가에선 카드 결제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아 상인과 고객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정전 지역 식당들은 냉장고 전원이 꺼졌다며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산 롯데시네마에서는 낮 12시50분부터 1시간 동안 영화 상영이 중단되는 바람에 고객들의 환불 문의가 쏟아졌다.
서울 서남부 지역 신호등 200여 개도 정전으로 작동을 멈추면서 차량과 보행자 역시 혼란을 겪었다. 금천구 독산동 주민 윤모(31)씨는 “신림역 근처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신림역 사거리 신호등이 마비돼 보행자 대부분이 지하철 보행로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금천ㆍ관악구 일부 지역은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가 정전되면서 20분 정도 단수 조치가 됐다.
대규모 정전은 경기 광명 소재 영서변전소의 개폐 기능에 이상이 생긴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됐으나, 한전은 구체적인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영서변전소가 광명과 시흥변전소에 연결돼 있고, 여기서 다시 독산, 대방, 대림, 구공, 신길변전소로 전기를 보내기 때문에 영서변전소 1곳의 문제가 7곳의 다른 변전소로 확대, 피해가 확산된 걸로 보인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전력시스템에, 변전소의 노후화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서변전소는 1978년 준공돼 올해로 39년째 운영 중이다. 전국 831개 변전소 중 39년 이상 된 변전소는 43곳이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시민과 영업장 등에 대한 피해는 신속히 보상하겠다”며 사과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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