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립군’은 다른 영화와 달리 세트 촬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실제 현장을 찾아가서 촬영했으며 500년 전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마저도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야 했다. 특히 대립군 일행들이 세자인 광해(여진구 분)를 가마에 태워 길도 없는 산 속을 오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김무열은 “가마 드는 게 정말 힘들었다. 산도 등산로가 아니라 길이 없는 비탈길로 걸었다. 중간 중간 땅이 움푹 파여 있고, 길이 아닌데 자꾸 가라는 거다. 결국 우리가 길을 만들었다. 가마를 들고 죽은 나무를 넘어가는데 습기가 많아 미끄러웠다. 나는 대립군 중 어린 편이라서 내가 다 들어야 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정윤철 감독에 대한 원망(?)도 쏟아냈다. 정윤철 감독도 배우들이 힘들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컷을 할 때 배우들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감독님이 미웠다. 감독님은 ‘한 번만 더할게요’라고 말하면서 바로 카메라만 보셨다. 우리는 땀에 속옷까지 다 버릴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 끝에 탄생했기 때문에 ‘대립군’은 수려한 우리나라의 절경을 곳곳에 담을 수 있었다.
힘든 곳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다 보니 실제 배우들끼리 전우애가 생겼을 정도였다. 특히 시나리오 순서대로 영화가 촬영돼 영화에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잘 연결되어 나타난다. 김무열은 “처음엔 대립군과 분조 일행이 섞이지 않았다. 분조엔 선생님들과 여배우들이 있어서 그런지 촬영을 안 할 때는 모니터 뒤에 있었다. 그런데 대립군은 옷도 편해서 마음이 편한지 다들 바닥에 앉아 있으면서 놀았다.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되면서 중간 이후엔 서로 같이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고된 촬영 덕분인지 술도 빠지지 않았다. 김무열은 “몸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처럼 힘들게 하루 끝내고 술을 마시고 바로 자는 서클로 생활했다”며 “주로 대립군 멤버들, 특히 오광록 선배가 끝나고 밥이라도 먹고 헤어지자고 말씀 하셨다. 그런데 밥 먹는데 소주 한 잔 필요하니까”라며 어쩔 수 없이(?) 술을 먹었다고 이야기 했다. 공동 적으로 감독님을 정해놓고, 스태프 모두 노조가 되어 하나로 뭉쳤다는 것이다. 하나의 적 아래 뭉치니 배우들은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개혁 방안에 대해 구상을 했다. 감독님 뒷담화를 하고 우리끼리 똘똘 뭉쳤다. 이정재 선배는 자기가 돈 내겠다며 고기도 사줬다”고 덧붙였다.
김무열 말에 따르면 ‘배우 노조에 의해 술자리는 잘 못 끼셨다’는 정윤철 감독은 카메라 앞뒤에서 언제나 “한량” 같았다. 이 모습은 오히려 배우들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김무열은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올 로케이션이라 시간적 제약이 가장 힘들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바쁜 상황에서 감독님마저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감독님은 이상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몰랐는데 정말 그날그날 촬영이 잘 마무리가 됐다”고 말했다.
현장의 막내 여진구 역시 형들 사이에 끼어 다니기 바빴다. 이런 여진구를 보며 김무열은 그를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진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김무열의 대화 속에서는 그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왔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는 물수제비를 뜨고, 나무를 꺾어서 뭔가를 만들고, 돌탑도 쌓고 자연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며 “여진구가 재밌는 성격은 아니다. 진지하다. 그런데 귀여운 게 어린 애들이 형들 놀고 있으면 쫓아다니는 것처럼 ‘형 이거 뭐예요?’라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어본다. 귀엽게 형들한테 다가왔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대립군’을 촬영하면서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은 연기를 하면서도 드러났다. 영화의 마지막쯤 곡수를 포함해 모든 대립군이 모여 “이제 우리는 의병인가?”라는 대사를 하면서 ‘허허’ 웃는다. 이들이 웃음을 짓는 장면에 대해 감독의 분명한 디렉션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정윤철 감독은 연기자들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무열은 “따로 디렉션이 없었는데, 그때 다 같이 웃었다. 가상이긴 하지만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았던 대립군들이 의병의 시발점이 되는 순간인데, 그 과정을 순서대로 찍다 보니까 많은 감정들이 교차 했다. 특히 중간에 나는 몇 주 정도 대립군 친구들을 못 만났었는데 마지막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그 대사를 할 때 화면에는 안 나왔지만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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