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된 ‘청와대에 보낸 복지부 이메일’
법원 “국민연금에 압력 증거” 인정
향후 재판서도 증거활용 가능성
법정 온 삼성 관계자 굳은 표정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외압을 넣은 혐의를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유죄 판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는 모양새다. 특히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 전 장관 혐의 입증을 위해 제출한 ‘복지부가 청와대에 보낸 이메일’과 관련해 법원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과 관련성이 높은 증거”라고 판결문에 명시해 향후 두 재판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조정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박근혜 정부 임기 내 성사시키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특검의 ‘삼성 뇌물 사건’ 얼개이기 때문이다.
9일 공개된 판결문에는 문 전 장관 측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던 특검의 증거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담겨 있다. 이 증거는 2015년 6월23일부터 9월15일 사이에 복지부 A사무관이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의 김모 행정관에게 보낸 ‘삼성합병 관련 보고’이메일이다. 문 전 장관 측은 특검이 이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아갔다며 위법하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이메일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 의결권행사의 처리지침, 추진방안, 상황보고 등이 담긴 자료로, 문 전 장관이 공소사실과 같이 청와대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과 관련성이 높은 증거”라고 명시하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재판부가 문 전 장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는 대목에선 ‘청와대 지시’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 판결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이나 특검이 판결문에 언급된 증거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 증거로 내세워 혐의 입증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원 안팎에선 “문 전 장관과 박 전 대통령, 이 부회장의 담당 재판부가 서로 다르고, 판사는 해당 재판에서 제시되는 증거와 진술로만 혐의를 판단하기 때문에 문 전 장관의 판결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삼성 측은 문 전 장관의 1심 판결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섣부르게 대응할 경우 이 부회장 등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공판에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도 증인 신청이 됐으니 지금으로서는 재판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이 부회장 등의 26차 재판이 열린 법정 분위기는 한층 무거웠다. 피고인 석에 앉은 이 부회장과 전직 삼성 임원들, 방청석의 삼성 관계자들 얼굴엔 굳은 표정이 역력했다. 반대로 특검은 증인으로 나온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삼성합병은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로 개편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느냐”,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청와대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느냐” 등 삼성과 청와대 간의 연결고리를 집중 공략하려는 질문들로 공세를 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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