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래 최악의 테러가 발생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1,500㎏의 폭탄을 싣고 독일 대사관 방향으로 향하던 쓰레기 트럭은 15년차 경찰관 아사둘라 안다라비(48)의 제지를 받자마자 폭발했다. 안다라비를 포함해 15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테러의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사건 직후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됐다. 탈레반 대변인 자비불라 무자히드는 즉각 “우리 국민들은 이번 카불 공격이 무자히딘(탈레반)의 소행이 아님을 확실히 믿어도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다음 나온 2차 성명이다. 탈레반은 이어 “하카니 샤히브(남성 존칭)를 포함하여 우리 무자히딘 누구도 이번 사건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우린 민간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프간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DS)이 이번 테러 배후로 지목한, 그간 탈레반 연계 테러단체로 언급돼 온 ‘하카니 네트워크’를 탈레반이 먼저 나서 변호한 것이다. 두 조직의 공조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 탈레반 측에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카니 네트워크가 어떤 조직인가. 하카니 네트워크를 창시한 건 1980년대 대소련 무자히딘 영웅으로 꼽히는 잘랄우딘 하카니다. 탈레반 집권시기(1996~2001년) 유일한 비(非)탈레반 출신으로 아프간 국경부 장관을 지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첫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에서 부통령을 제안 받았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그는 오히려 외세 저항을 명분으로 싸우는 탈레반과 동맹을 택했다.
탈레반 운동이 남부 일대를 책임진다면 하카니 네트워크는 동부 4개 지방을 통칭하는 로야 팍티아 지역에서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상당히 숙련된 무장조직으로, 대량 살상을 노린 공격에 종종 배후로 의심받지만 단 한번도 소행을 밝힌 적이 없다. ‘동업자’ 탈레반은 하카니 의심 테러 행각에 “우리가 하지 않았다”며 부인해왔다. 그 관행과 비교하면 하카니를 대변한 탈레반의 2차 성명은 전례 없는 행보다.
탈레반이 이처럼 외연을 넓히며 아프간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나 미국은 부적절한 개입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아프간재건감찰기구(SIGAR)가 4월 30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이 통치(약 11%)하거나 정부군과 각축전을 벌이는 지역(약 29%)은 아프간 영토의 40% 이상이다. 남부 헬만드와 칸다하르는 거의 탈레반에 넘어갔다. SIGAR가 지난 16년간 아프간 재건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172억여달러. 아프간 위정자들의 부패와 분파주의는 물론 미 동맹세력들의 정책적 오판도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정세를 가장 예리하게 분석해온 카불 소재 아프간분석연구소의 보란 오스만은 지난달 9일 미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은 (아프간에서)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에 집착하고 있다”며 “아프간 영토의 거의 절반을 장악해가는 탈레반과 평화협상에 노력을 더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군이 지난 4월 IS 은신처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를 투하한 결정을 예로 들며, 2년 넘게 조직 체계조차 못 잡고 있는 IS를 상대로 한 공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오히려 극단주의 진영을 자극하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아프간 IS로 인한 테러는 2015년 여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탈레반은 같은 시기 전국에서 정예 군인 3,000여명을 동원해 IS 장악 지역의 67%를 탈환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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