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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DMZ 지척에 두고 쉼과 평화를 읽는다

입력
2017.06.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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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명연파(뒷편) 집장과 황수경 관장.
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명연파(뒷편) 집장과 황수경 관장.

여름이 다가오는 아침, 아직 서늘한 바람이 스쳐가는 살갗을 긴 팔 옷으로 여미며 도서관 문을 엽니다. ‘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은 임진강과 비무장지대(DMZ) 가까이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먼 남쪽에서 가끔 꼬마들이 오면 “여기가 북한이에요?”라고 질문합니다. 강을 경계로 끝이 안 보이는 철조망을 보면서 오고, 평소 보지 못한 탱크의 모습을 보기도 하니 당연히 그런 질문이 나오겠지요.

도서관이다보니 아주 쾌적한 잠자리를 제공할 수는 없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에는 친자매들이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고 좋아하는 책들을 함께 봅니다. 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그림책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엄마들에게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알릴 수 있는 책,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을 종종 읽어드리는데 가슴 뭉클한 울림이 있는 책에 가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때론 학교에서 같은 동아리를 하며 생각을 나누던 친구들이 밤을 지새우며 제노사이드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들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이렇게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며 살짝 흥분하기도 합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역사 속 한 시대의 인물이 되어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일까?’를 깊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 진지함 속에 가끔 빵 터지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덕분에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 연주를 멋지게 들려주는 친구 덕분에 아이들의 숨은 감성을 깨우는 시간, 그곳이 바로 평화를품은집의 일상입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

이영아 글ㆍ그림

꿈교출판사 발행ㆍ52쪽ㆍ1만4,800원

아리랑클럽

김연자 글ㆍ그림

제주동백습지센터 발행ㆍ9,800원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지음, 세루즈 블로크 그림ㆍ안수연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56쪽ㆍ1만원

이렇듯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까르르 웃고, 일상에서의 쉼과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눈 많은 책들 중에 우리에게 특별한 세 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까 합니다. 첫 번째 책은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라는 책입니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 집에 일본 옷을 입은 귀신이 나타납니다. 이 귀신은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며 꼭 자신의 비석을 찾아달라며 귀찮게 쫓아다닙니다. 귀찮아하던 할아버지는 금은보화 욕심에 아미동 곳곳을 비석을 찾아 헤맵니다. 온 동네를 뒤지던 할아버지와 귀신은 석양이 지는 마을에 앉아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 합니다. 대마도가 고향인 귀신은 몸이 아파 죽음을 맞이하고 이곳 아미동에 묻히게 되었고, 북한 땅에서 피난 온 할아버지는 오갈 데가 없어 이곳 공동묘지 위에 천막을 짓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책은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의 모습을 따뜻하게 보여주고, 타향살이를 하는 할아버지의 애잔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다 보면 낭독의 즐거움뿐 아니라 서로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에 푹 빠지게 됩니다.

두 번째 책은 제주 선흘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의 그림책 학교 이야기를 담은 ‘아리랑 클럽’입니다. 제주 방언 그대로 이야기를 담아낸 이 그림책은 누군가 번역을 해주지 않으면 내용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글과 그림 속에 할머니의 재미있는 하루가 고스란히 느껴져 책을 읽는 순간 누구나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여행을 앞둔 할머니들이 나들이 갈 때 입을 옷을 사기 위해 동문시장에 갑니다. 시장을 구경하고 양품점에도 들르고, 돈이 없으면 빌리기도 하면서 ‘이래왈왈’ ‘저래왈왈’ 이것저것 참견하며 쇼핑을 즐기는 모습은 정겹습니다.

“무사 이 집 앞에 아주망들이 모염심고?”

“다들 아리랑클럽 들어오켄 햄수다.”

“이 노릇을 어떵헐거라...”

제주말을 몰라도, 책에 적힌 그대로 읽어도 할머니들의 유쾌한 하루를 따라가는 데 부족함은 없습니다.

마지막 책은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책입니다. 우리는 늘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때론 비가 그치기를, 사랑이, 전쟁이 끝나기를... 좋아요라는 그 사람의 대답을... 우리 아기를... 휴가를... 이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아이들이 나를 보러 오기를... 그리고 새 식구가 될 손자를 나는 기다립니다.

이 책은 긴 호흡을 갖고 함께 읽어보기에 참 좋은 책입니다. 하룻밤 묵고 가는 분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 말하면 흔쾌히 건네는 책이기도 합니다. 책장 하나하나 넘기며 공감하고 넘길 때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책. 하룻밤의 평화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그렇게 평화를품은집의 하루하루는 책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고, 새로운 추억을 선물합니다. 언젠가 삶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다시 이곳을 찾을 독자들을 기다리면서 우리도 지치지 않고 일상에서의 쉼과 평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기다립니다.

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황수경 관장ㆍ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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