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생물
유명 박물관 미라 유전자까지
신속ㆍ정확한 유전자분석 서비스
153개국 1만8000여 고객 확보
작년 ‘3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도
환자ㆍ건강한 사람까지 고객 확장
“올해 매출 1000억원 돌파 목표”
1세대 생명공학 벤처기업 ‘마크로젠’이 어른이 됐다. 15평짜리 서울대 실험실에서 10여명이 모여 걸음마를 뗀 마크로젠은 세계 곳곳에 법인과 지사를 거느린 직원 450명의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키우는 것도 육아와 비슷하다. 옆에서 보면 거저 자란 것 같지만, 키운 사람의 사연은 말로 다 못한다. 마크로젠 창업주인 서정선 회장은 “마크로젠이 운 좋은 ‘신데렐라 컴퍼니’라는 얘기도 있는데, 우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크로젠은 지난 5일 서울 구로구 쉐라톤 디큐브시티호텔에서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고 7일 밝혔다. 이 자리에서 마크로젠 임직원들은 올해 세계시장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해 2020년 2,000억원을 달성하자고 다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47%라는 놀라운 기록을 일궈낸 만큼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업계도 내다보고 있다.
마크로젠의 주력 사업은 유전자 분석 서비스다.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필요한 유전자 정보를 첨단장비를 동원한 최신 분석기술로 신속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좁디좁은 국내 시장에만 안주했다면 이만한 성장은 턱도 없다. 국내 서비스 출시 2년 뒤인 2002년 마크로젠은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5달러만 보내세요’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단돈 5달러에 원하는 유전자를 분석해준다는 의미다. 당시 비슷한 서비스가 20달러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가격파괴였다.
값만 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연구개발 분야에선 정확도가 생명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마크로젠은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와 함께 네이처에 유전자 분석 관련 논문을 20년간 13편 냈다. 네이처는 연구자가 평생 논문 한두 편 내기도 쉽지 않은 학술지이다. 서비스와 연구를 병행한 전략은 먹혀들었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생물 유전자, 유명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미라 유전자까지 온갖 유전정보가 마크로젠을 거쳐 세상에 알려졌다.
생명공학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했다. 고객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 싶으면 새 장비가 필요했고, 시장을 넓혔다 싶으면 신기술을 익혀야 했다. 2002년 2월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 최초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은 서 회장의 표현에 따르면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런 순간순간들을 서 회장은 “칠흑 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천둥번개에 파도가 밀려오는데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떠 있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마크로젠은 애초에 가려던 길을 묵묵히 고집했다. 유전자 분석으로 연구자를 돕겠다는 목표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은 신뢰가 153개국 1만8,000여 고객을 만들었다. 생명공학 벤처기업으로는 드물게 지난해 ‘3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19개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유전체 연구 프로젝트 ‘지놈아시아 이니셔티브’에서 활동하게 됐다.
이제 20달러에 유전자 수천개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 마크로젠은 고객층을 연구자에서 환자로, 이후 건강한 사람으로 확장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유전 질환이나 선천성 질환, 암 같은 난치병 등을 예방, 진단해주는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서 회장은 “기술이전이나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만이 아닌 실제 매출과 실적으로 바이오산업을 주목 받는 사업으로 성장시킨 게 마크로젠의 중요한 성과”라며 “앞으로는 유전자 빅데이터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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