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분 한 분”이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애국’은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 수단처럼 이용되었던 게 현실이다. 전쟁 경험자가 다수인 보수 세력은 진보를 무조건 ‘빨갱이’ ‘매국노’로 호도했다. 이런 우격다짐에 애국 자체를 폄훼하는 진보 세력도 없지 않았다. ‘애국’을 편향된 이념 정치를 위한 전가의 보도로 이용한 권력도 있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좌파 낙인 찍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유별나게 태극기 사랑을 강조한 박근혜 정권이 대표적이다. 거기서 ‘애국’은 이름뿐이었거나 일부 집단ㆍ정파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지적한 대로 애국자란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치거나 숨진 장병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 전시 후방에서 탄약과 식량을 나른 주민들, 머나먼 독일 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궂은 병원 일을 감당한 파독 광부ㆍ간호사들, 청계천변 다락방에서 젊음을 바친 노동자들처럼 나라를 지키고 일으킨 모든 사람을 애국자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6ㆍ25 당시 전장의 고지에서 휘날리던 태극기와 5ㆍ18, 6월 항쟁 등 민주주의 현장에서 흔들었던 태극기가 다를 리도 없다.
공동체를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유공자고 의인이다. 6ㆍ25나 베트남전 참전자라고 무조건 보수 우익으로 재단해서도, 민주화에 헌신했다고 종북 빨갱이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이분법의 낡고 잘못된 애국 관념을 극복하려면 우선 이념적인 재단 없이 모든 국가유공자와 의인들에게 각각의 희생에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훈처의 장관급 기구 격상은 그런 권한 강화라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권력이 ‘애국’을 앞세워 이념 정치를 강화하려는 구태가 재연되어서도 결코 안 된다. 편협한 애국 관념을 극복하려는 시민의 각성 역시 중요하다. 이날 대통령 추념사 중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 갈등을 끝내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대목을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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