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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과 맨손으로 싸우고…손님 먼저 피신시키고…

입력
2017.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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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 경관이 범인들과 격투

인근 식당선 일사불란한 대피로

손님 130여명 안전 지켜내

부상자 지혈 목숨 지킨 간호사도

영국 런던 브리지 테러 다음날인 4일 컴브리아주 칼라일의 시민들이 테러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들고 애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영국 런던 브리지 테러 다음날인 4일 컴브리아주 칼라일의 시민들이 테러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들고 애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발생한 영국 런던 브리지 테러범들의 잔학한 행각이 속속 전해지는 가운데, 공포스러운 상황 중에도 피신보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평범한 영웅’들에게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테러범에 맨손으로 맞서 싸운 경찰과 상점 손님들을 재빨리 대피시킨 직원 등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행동한 의인 덕분에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다.

테러범 3명이 런던 브리지 인근 버러 마켓을 덮친 이날 오후 10시 10분쯤, 흉기로 무장한 이들을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경관은 부임한지 갓 2년이 된 교통경찰 A씨와 비번이었던 경찰 B씨였다. B씨는 진압 도구를 갖추긴커녕 제복도 입지 않았던 데다 A씨 역시 손에 경찰봉 하나만 쥔 상태였다. 당시 테러범들은 자살폭탄용 조끼로 위장한 장비를 입고 있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각자 테러범과 맨손 싸움을 감행해, 총으로 무장한 진압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수 분간 대치했다. A씨는 얼굴과 다리 등을 칼에 찔렸음에도 다행히 안정을 찾았으나 B씨는 중상을 입었다고 BBC방송은 5일 전했다. 크레시다 딕 런던경찰청장은 “처음 현장을 목격한 근무 중이거나 쉬고 있었던 경찰관들이 위험(상황)으로 달려드는, 놀라울 만큼 용감한 행동을 보여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테러범들이 진입을 시도한 인근 가게에서도 시민들을 구하려는 손길은 이어졌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해 주로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식사 중인 시간대였던 만큼 이들에게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직원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전해졌다. 이중 버러 마켓 중심에서 식당 ‘카페 브루드’를 운영 중인 마크 스템브릿지는 130여명의 손님을 무사히 대피시키고서도 “모두 직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스템브릿지는 테러범들이 흉기를 든 채 식당으로 다가오자 “알바니아 군인 출신인 3명의 직원들이 테라스에 있는 손님들을 모두 들여보냈다“며 “우리의 일사불란한 모습에 테러범들이 당황한 듯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웨스트민스터 테러(3월) 이후 경찰이 가게 주인ㆍ직원에게 교육해 준 대응 요령이 큰 도움이 됐다”며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런던 버러 마켓 '엘 파스토르' 식당에서 부상한 여성을 치료한 카를로스 핀토(왼쪽)와 그의 파트너 지오반니 사그리스타니. BBC 웹사이트 캡처
영국 런던 버러 마켓 '엘 파스토르' 식당에서 부상한 여성을 치료한 카를로스 핀토(왼쪽)와 그의 파트너 지오반니 사그리스타니. BBC 웹사이트 캡처

안타깝게 테러범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으나 현장에 있었던 시민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이도 있었다. 버러 마켓 서쪽 구역의 ‘엘 파스토르’ 식당에서 테러범에게 공격 당한 한 여성은 “0.5 ℓ가 넘는 출혈”에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의자와 유리병을 던져 테러범을 쫓아낸 시민들에 이어, 우연히 이곳에 있던 응급치료 전문 간호사 카를로스 핀토(33)도 동료 간호사와 함께 얼음과 천으로 부상 여성을 지혈한 덕분이다. 핀토와 동행한 지오반니 사그리스타니는 “구조대에 발견되기까지 2시간 동안 그가 의식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며 “모두가 식당 뒤편에서 침착하게 여성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테러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테러에 쫓긴 시민들과 희생자 가족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피난처 지도’가 올라오는 등 슬픔을 나누려는 손길이 이어졌다. 딕 청장은 “정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한 상황에서 남을 도왔다”며 “이들의 용기가 많은 생명을 살렸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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