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내야수 최원준(20)은 최근 야구를 하면서 평생 한번 하기도 힘든 경험을 했다. 지난달 28일 광주 롯데전에서 무려 만루 기회를 네 차례나 마주했고, 세 번의 기회를 놓친 뒤 마지막 타석 때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보통 만루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위축되기 마련인데 고졸 2년차 선수는 세 차례 ‘멘붕’(멘탈 붕괴)을 딛고 3전4기 드라마를 썼다. 또 이 선수를 믿고 끝까지 밀어붙인 김기태(48) KIA 감독의 뚝심도 대단했다.
최원준은 5일 본보와 통화에서 “7회 2사 만루에서 못 치고 (명단에서)빠질 줄 알았고, 9회 1사 만루에서는 경기를 끝낼 수 있다는 생각과 긴장한 나머지 힘이 너무 들어갔다”며 “그 순간 힘들었지만 선배들이 ‘찬스는 또 오니까 끝날 때까지 집중하라’는 말을 해줘 견뎌냈다. 그리고 실제 상상만 했던 일이 일어나 정말 신기했다”고 돌이켜봤다.
스무 살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극복한 최원준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게’라는 문구를 머리 속에 새겼다. 그는 “지난 주말 대구 원정 때 배요한 트레이너가 해준 말인데, 나에게 정말 와 닿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로에 와서 내야수가 아닌 외야수로 뛰어야 한다는 마음에 부담감을 안고 있었지만 김민호 코치님이 ‘포기하지 말라’고 해줬고, 김태룡 코치님도 자신감을 많이 심어줬다”고 덧붙였다.
최원준은 KIA의 향후 10년을 이끌 미래 자원이다. 서울고 재학 시절인 2015년 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고, 2016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 1라운드 3순위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김 감독은 한 눈에 최원준의 타격 재능을 알아봤다. ‘수비에 약점이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실수할 것을 알고 내보낸다”고 할 정도로 신뢰했다.
실제 최원준은 프로 첫해였던 2016년 1군 14경기에 나가 타율 0.458(24타수 11안타) 1홈런 4타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또 올 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에서도 코칭스태프의 집중 관리 속에 개막 엔트리까지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팀의 야수층이 두꺼워 최원준은 대타와 대주자로 역할이 한정됐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1군에 몸을 담고 있는 자체 만으로 기뻤지만 이 행복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4월6일 SK전에서 도루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1군에서 빠졌다.
한 달간 재활에 들어간 사이 최원준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내야든, 외야든 모두 포화 상태였다. 최원준은 “김민호 코치님으로부터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재활하며 2군에서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5월초부터 2군 경기를 뛴 그는 13경기에서 타율 0.350 1홈런 7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때마침 김주형과 신종길은 타격 부진, 김주찬과 이범호는 각각 손목, 허벅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최원준은 1군의 부름을 다시 받았다.
내야와 외야 모두 가능하지만 이범호의 빈 자리 3루를 대신해서 맡은 그는 “(이)범호 선배가 돌아올 때까지 공백이 안 느껴지게끔 잘 버티자고 했는데, 팀이 1등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다행”이라며 “출전하는 경기마다 팀이 이기고, 투수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야수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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