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순직 소방관 아들의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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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순직 소방관 아들의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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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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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동료들 어려움 세상에 알려요”

故 정성철 소방령 아들 비담씨

문예창작팀 꾸려 ‘소방관 전시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문화예술창작기획팀 '필로'의 팀원인 왕동환(왼쪽부터), 이호원, 정비담씨와 전시공간을 제공한 이상정(오른쪽 뒤) L153 아트 컴퍼니 대표가 지난달 30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46,47'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L153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비담씨 뒤에 있는 작품이 폐소방복을 활용한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파이어 파이터'이고, 맨 오른쪽 제복은 정비담씨의 아버지 고 정성철 소방령이 생전 입던 것이다.

강원소방본부 소방항공대 특수구조단 소속 헬기조종사였던 아버지는 2014년 7월 17일 대원들과 함께 세월호 선체 수색에 나섰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헬기가 수색작업 후 복귀하던 중 경기 광주시 인근에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웃음을 잃었다.

1년 넘게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던 아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자신의 대학 선후배들과 필로(FILO)라는 문화예술창작기획팀을 꾸렸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소방관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아버지 고 정성철 소방령을 그리며 전시회를 준비한 아들 정비담(27)씨 이야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정씨와 학교 선후배인 왕동환(28)·이호원(21)씨로 꾸려진 필로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서울 연희동 L153갤러리에서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 46,47’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명은 불길 속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는 의미와 소방 무전에서 전달내용을 알았는지 묻는 의미인 ‘46’과 알아들었다는 ‘47’을 합친 것이다. 팀명 역시 프로젝트명의 앞 글자만 따온 것이다.

프로젝트명만 봐도 알 수 있듯 필로의 프로젝트는 소방관들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소방관들과 시민들의 상호 소통을 돕는 게 목표다. 그래서 프로젝트에는 소방 폐장비를 이용한 설치작품 전시회는 물론 현직 소방관들과 시민들의 대화시간까지 포함했다. “소방관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진화작업을 마친 소방관들에게 맛있고, 힘낼 수 있는 보양식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답니다. 체력이 너무 고갈된 상태라 죽 같은 편안한 음식부터 섭취해 속을 달래야지 안 그러면 탈이 난대요.”

설치작품 통해 현실·노고 전하고

시민과 대화시간 소통에도 일조

소방 폐장비를 이용한 리사이클링 설치 작품 등이 전시된 전시회에서 많은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파이어파이터’다. 필로 팀원 중 유일한 작가인 왕씨의 작품으로 폐소방복을 걸친 작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방 폐장비는 엄연한 국가 장비인 만큼 전시회가 끝나면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에 반납해야 한다. “작품명을 한글인 ‘소방관’으로 하지 않고 ‘파이어파이터’로 한 것은 불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숙명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정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안 소방 폐장비를 빌리는 것부터 전시회장을 구하고, 소방관을 섭외하기까지 쉬운 일은 없었다.

프로젝트에 앞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전시회장 임대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한 포털사이트로 뜻을 같이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펀딩을 진행했지만 생각만큼 신통치 않았다. 필로의 딱한 상황에 이상정 L153 아트 컴퍼니 대표는 공간을 선뜻 내줬다. 또 아버지 사고 후 슬픔에 젖어 있던 정씨에게 먼저 연락을 해 와 심리치료를 해 준 현직 소방관인 박승균 소방심리상담가 덕분에 소방관 섭외 등 프로젝트와 관련된 소방업무에 도움을 받았다.

정씨 아버지 일을 계기로 필로가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로 국내 소방관들의 과도한 업무에 따른 피로와 근무 중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크게 해소될 수는 없다. 프로젝트가 단기간 진행되는데다 전시회 공간 크기도 크지 않은 등의 현실적인 제약조건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 지금은 씨앗을 뿌리는 중이라고 했다.

“내년에도 소방관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소방관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글·사진 이태무 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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