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톱다운식 편성 탈피”
기재부도다 ‘돈 쓰는 부처’힘실려
“기재부의 견제 장치 약해지면 지출 급증ㆍ예산 낭비 불 보듯”
문재인 정부가 나라 살림에서 복지ㆍ고용 관련 사회 부처의 역할을 강조하며 기존 기획재정부 중심의 예산편성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새 정부가 성장ㆍ고용ㆍ복지를 국정운영 3대 핵심축으로 세운 만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 ‘돈 쓰는 부처’의 입김은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곳간 열쇠를 쥐고 나라살림 총량을 통제해 온 기재부의 견제가 약해지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산편성 주도권이 바뀔 움직임은 새 정부 국정운영 청사진을 짜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감지된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지난 9년간 기재부 등 경제부처 중심으로 성장 정책을 운영해 저성장과 양극화만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김성주 국정기획위 전문위원단장도 “이제까지 기재부가 최상위 기구로 예산을 정하고 배분하면서 사회정책보다 경제정책이 앞서갔다”며 “톱다운(Top-downㆍ하향식) 방식의 예산 편성을 보텀업(Bottom-upㆍ상향식)으로 바꾸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일자리ㆍ저출산 정책에선 재정 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정책 실현을 우선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예산편성 방식으로 채택한 현행 톱다운 방식은 노무현 정부가 재정개혁 일환으로 도입한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를 말한다. 국가재정법은 “기재부 장관이 예산편성지침에 부처별 지출 한도를 포함해 통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재부가 특정 부처에 ‘여기까지만 돈을 쓰라’고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올해 보건ㆍ복지ㆍ고용 재원이 130조원으로 설정돼 있어, 복지부나 고용노동부는 이 한도에 맞춰 기재부에 예산을 요구해야 한다. 반면 품목별편성제도(보텀업)는 중장기 계획 없이 부처별로 개별사업 예산을 편성하면 재정당국이 사업성을 심의해 예산을 정하는 식이다.
그 동안 기재부의 기득권에 불만을 가졌던 다른 부처들은 국정기획위의 제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중앙부처 간부는 “톱다운 방식의 취지는 부처별 총액만 정해주고 개별 사업 예산 편성은 부처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기재부가 총액과 개별예산을 모두 들여다보는 식이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ㆍ고용 확대를 달성하려면 나랏돈을 예전보다는 더 써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 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부처별 요구를 다 받아들일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를 피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재정 당국 관계자는 “기재부가 국정 아젠다와 재정 건전성 원칙에 따라 중립적으로 각 부처 예산을 심의하는 것은 필수적 기능”이라며 “부처 간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은 현행 톱다운 방식 내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고령화 탓에 재정건전성이 악화할 일만 남은 상황에서 예산편성 방식을 바꾸면 재정 악화와 예산 낭비만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중기적 관점(건전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예산을 짜는 컨트롤타워가 약화되면 복지 지출은 더 빨리 팽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경제활성화ㆍ산업 진흥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예산편성을 복지ㆍ민생으로 옮겨야 한다는 취지는 맞지만 예산 편성 방식까지 바꾸면 자칫 객관성과 중립성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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