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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 파리기후협약 탈퇴와 공유지의 비극

입력
2017.06.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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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취임 후 대표적인 기후변화 부정론자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청정에너지계획을 무력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전세계적인 기후변화대응 흐름에 반하는 일련의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선택을 감행하고 말았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일제히 미국의 결정을 비난하고 나섰고,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심각한 우려의 표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및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 출연거부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연쇄적인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과서에서 배운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의 전형적인 현실판 사례이다. 공유지인 목초지에 양을 키우는 목동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많은 양을 키우면서 결국 목초지도 사라지고 목동들도 사라지는 비극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온실가스배출의 영향을 받지 않은 깨끗한 지구는 누구에게도 권리가 귀속되지 않은 공유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구성원들은 그 공유지에 탄소배출 행위를 함으로써 산업적ㆍ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는 구도이다. 공유지로의 탄소배출행위 이익은 그 배출행위를 한 주체에 온전히 귀속되지만, 그로 인한 비용은 현재 및 미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나뉘어서 귀속된다. 각 배출행위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배출행위를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각 배출행위자들의 이러한 합리적 선택들이 집합적으로 결집되면 공유지 전체의 소멸 및 그 공유지에 삶의 기반을 두고 있는 인류의 소멸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상호 합의에 따른 상호 강제(mutual coercion mutually agreed upon)’가 필수적이다. 각 구성원 입장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이 상호 합의를 지키는 상황에서 자신만 그 합의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면 언제나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공유지 위의 전체 구성원들이 그와 같은 합의에 이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파리기후협정은 기후변화라는 공유지의 비극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구성원들이 매우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르게 된 소중한 상호 합의이다.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낸 합의가 미국과 같은 주요한 국가의 지도자에 의해 무력하게 된 것은 그것 자체로 비극이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합의가 무력하게 된 상황에서 자국의 산업적 이익을 희생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정책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합의로부터 이탈할 것인지에 관한 전략적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상황은 그것 자체로 비극이라고 잘 표현되지 않는다. 이 경우 그 분노와 증오의 대상에 대한 응징과 제재가 주된 관심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대방이 특정해서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각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그 각자의 최선들이 집합적으로 결집되어서 전체적인 파국으로 장엄하게 진행되는 상황이 진정한 비극이다.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의 시대에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선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를 가지게 된 것은 미국 국민에게는 물론이고 전세계 구성원들에게 더할 수 없이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 비극적인 사태의 진행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새 대통령은 이러한 비극의 시대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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