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위한 새 협정 추진…
파리 아닌 피츠버그 위해 선출”
“플랜B 없다” 각국 재협상불가 공언
“미국 우선주의 아닌 나홀로 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파리협정을 비준한 지 9개월 만으로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의 이탈이 현실화면서 국제사회의 반(反) 온난화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아닌 미국 왕따(America Alone) 정책(파이낸셜타임스)”이란 비판이 나오는 등 미국의 마이웨이 행태는 거센 반발을 불러 글로벌 리더 위상에도 타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 파리협정의 모든 이행을 중단한다”며 “나는 미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과 미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새로운 협정을 추진하겠다”며 재협상 의사를 드러냈다. 다만 “공정한 협정이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재협상이)안돼도 좋다”는 단서도 달았다.
그는 미국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무거운 이산화탄소 감축의무를 지는 탓에 석탄, 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심각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반면, 지구온난화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을 협정 탈퇴 이유로 내세웠다. 또 한국에 사무국을 둔 녹색기후기금(GCF) 운영방식과 관련 “예산 부족으로 시민 안전에 필요한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도시가 수두룩한 미국이 이런 곳에 돈을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과거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다가 쇠퇴한 피츠버그를 언급한 것은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부흥을 내건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협정 탈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피츠버그는 더 이상 1975년의 그곳이 아니다”라며 신재생에너지 중심 도시로 탈바꿈한 피츠버그를 사례로 든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에 사실상 미국을 제외한 모든 파리협정 당사국들이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의 탈퇴 선언 직후 트럼프와 통화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은 재협상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총리 측은 “영국 정부는 합의 이행을 재확인했다”고 전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별도의 대국민 연설을 통해 “기후에 더 이상 실수를 저지르면 안된다. (지구를 대체할) 행성B가 없기에 (파리협정을 대신할) 플랜B도 없다”며 재협상 불가를 공언했다. WP는 “파리협정에 아예 재협상 규정이 없는데도 트럼프의 발언으로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밀월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야마모토 고이치(山本公一) 환경장관조차 “인류의 지혜에 등을 돌린 결정”이라며 실망을 드러냈다. 우리 외교부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연대와 노력이 약화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미국은 국제적 악당(rogue)이 됐다(마리 로빈슨 전 유엔 기후변화 특별사절)” 등 거친 반응도 터져 나왔다.
외신 역시 “지구가 더 뜨거워지게 됐다”며 미국의 결정을 우려하고 있다. 2015년 196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은 산업혁명 당시와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 아래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 CNN은 “미국이 현 수준으로 계속 탄소를 배출할 경우 2100년쯤 감축 약속을 이행했을 때보다 평균기온이 0.3도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3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파리협정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서명한 협정 행정명령을 파기하거나 협정 기반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탈퇴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전자는 2019년 11월까지 탈퇴 통보가 불가능한 협정 규정상 시간이 오래 걸리고, 후자는 상원 의결을 거쳐야 한다. 때문에 불리한 협정 조항을 단순히 이행하지 않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도 ‘비구속 조항’ 이행을 중단하겠다고 말해 마지막 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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