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집권을 이유로 가자지구를 봉쇄한 지 이번 달로 정확히 10년이 됐다. 주민들의 이동은커녕 식량과 의료품 등 물자 유입이 통제된 가자지구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월경 시도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전문 온라인매체 일렉트로닉인티파다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3개월간 팔레스타인 측에 적발된 것만 280번에 달한다. 흔히 ‘50일 전쟁’이라 불리지만 사실상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침공이었던 2014년 7월 가자지구 공습 중 2,2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민간인 1,462명 포함)이 사망한 이래 이러한 시도는 매달 25% 가량 늘고 있다. 이들은 주기적 공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혹은 이미 도로ㆍ항만ㆍ공항 등 기반시설이 모두 파괴된 가자지구에서보다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있다.
족쇄가 채워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절망을 더하는 이는 다름아닌 이웃국가 이집트다. 가자지구 봉쇄는 남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의 ‘협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2007년 6월 봉쇄 이후 이집트는 평균 40일에 3~5일 꼴로 불규칙하게 국경을 열어줄 뿐 물자 반입은 일절 금하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국경 개방을 기다리며 인근에 대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늘어만 가는 체류비, 교통비 부담에 신음하고, 심한 경우 국경에서 죽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들은 결국 자구책으로 이집트 접경 도시인 라파에 지하 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육ㆍ해ㆍ공 경로가 모두 봉쇄된 후 생겨난 수백개의 터널은 200만여명의 가자 주민에게 숨통을 틔워줬다.
하지만 희망의 빛이 드리운 것도 잠시. 터널 등장과 동시에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조직적인 터널 붕괴 공작도 시작됐다. 이집트군은 지하에 터널 건설 노동자들이 버젓이 있음에도 그대로 독가스를 살포하거나 오염된 하수와 바닷물을 흘려 보내 터널을 붕괴시키고 있다. 지난달 파괴된 가자지구와 이집트 시나이 반도 간 터널 두 곳을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27개 터널이 무너졌다.
2012년 이집트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가 본래 무슬림 형제단의 방계조직이었다는 점에서 봉쇄 완화가 가능하리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군부와 대립 등 불안정한 국내 정치 속에 미국ㆍ이스라엘과 안정적인 관계를 필요로 했던 무르시 정권은 특별한 입장 선회 없이 계속해서 터널을 파괴했다. 무르시 집권 1년만에 쿠데타로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 또한 터널 붕괴 작업을 가속화했다.
이집트가 이렇게까지 이스라엘에 동조하게 된 데는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했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사망(1970년 9월)이 중요한 기점이 됐다. 나세르 하 이집트는 네 차례 중동전쟁을 치를 만큼 이스라엘과 정면 갈등을 불사했으나 나세르의 사망 이후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이집트 정부는 1979년 3월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통해 아랍 국가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승인했고, 그 대가로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2011년 ‘아랍의 봄’까지 40여년간 군사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물론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군사 원조를 받고 있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집트 군부는 결국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터널 파괴와 봉쇄를 정당화하고 있다. 터널을 통해 불법적인 무기들이 유통되고 있고 하마스가 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불법 행위가 있더라도 그 책임을 무고한 주민에게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논리라면 불법 무기 밀매의 파트너인 이집트인들이 사는 이집트도 봉쇄해야 한다. 지난해 6월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사람과 경제를 고사”시키는 가자 봉쇄를 국제법상 위법한 “집단 처벌”이라고 규탄했다.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의 기수를 자임했던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이 맞서 싸워야 할 억압자로 자리 잡고 있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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