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과 관련, “일본의 주권하에 들어가면 이 섬에 미군기지가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푸틴이 이 지역의 미군 진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푸틴측이 섬 반환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러시아와 북방 4개섬 ‘공동경제활동’구상을 추진해온 일본 측에 비상이 걸렸다.
NHK방송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을 계기로 현지에서 열린 해외통신사 간부들과의 인터뷰에서 쿠릴섬에 대한 러시아의 군비증강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같이 밝혔다. 쿠릴 4개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가 실효지배중인 쿠릴열도 남단의 이투룹(일본명 에토로후), 쿠나시르(쿠나시리),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섬을 지칭한다.
푸틴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의 유럽지역 영토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똑같은 일이 동방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염두에 둔 듯, “미국이 북한정세를 구실로 한국 등에 미사일 방어시스템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로선 우려되는 사항”이라고 언급했다. 푸틴은 “지역 전체의 긴장완화를 생각해야 한다”며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강하게 경계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은 북한 위협을 이유로 미국과 미사일방어(MD)를 둘러싼 협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북한을 자국의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러시아의 상대는 미국이어서 일본 정부의 협상이 매우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푸틴이 쿠릴섬의 상황변화를 들고나오면서 북방영토를 되찾아오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구상이 다시 벽에 부딪치는 형국이다. 푸틴 측이 쿠릴섬을 미일동맹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전략적 방어 최전선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쿠나시르섬과 이투룹에 신형 지대함미사일을 배치했으며, 올 2월에는 북방영토 주변에 새롭게 1개 사단을 배치할 것을 밝히는 등 4개 섬의 군사거점화를 진행중이다. 러일 양국이 경제적 실익과 북방영토 회복이란 명분을 주고받으려던 쿠릴섬 문제가 다시 안보문제로 대척점이 이동하면서 난항을 겪는 양상이 됐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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