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ㆍ송은주 옮김
다산책방 발행ㆍ272쪽ㆍ1만4,000원
1930년대 소비에트연방공화국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로 일하던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의 의무 중 하나는 학생들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 시험을 돕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은 인민의 것이다-V. I 레닌’이라고 적힌 거대한 현수막 아래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는 주 시험관 옆에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자, 예술은 누구의 것이지?” 당황한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고, 이 단순한 질문은 부메랑이 돼 학생을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드미트리 귓가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자, 예술은 누구의 것이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가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은 소련 스탈린 독재와 2차 세계대전, 흐루쇼프 체제에서 살아남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19세에 작곡한 교향곡 1번으로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세기의 천재는 1936년 스탈린 앞에서 연주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관한 악평이 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실리면서 음악 연주를 금지 당한다. 그를 지원했던 투하쳅스키 대원수마저 반(反)스탈린 쿠데타 주모자로 지목돼 처형되면서, 천재는 가족 앞에서 끌려가는 것만은 피하려고 집을 나와 매일 밤을 층계참에서 지새우는 처지로 전락한다. 대숙청이라는 이름 아래 블랙리스트에 오른 친구와 동료들이 은밀히 사라져가는 암흑의 시대, 형식주의적 작풍을 지적받은 드리트리는 자기비판을 통해 살아남는다. 한밤 중 홀로 계단에 서서 “자기 마음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이제 “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커지자 진실을 아이러니로 위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이 사후 ‘유로비드(궁중곡예사처럼 바보인 척하지만 실은 지적이고 아이러니를 즐겨 쓰던 사람)’적 태도라고 해석되는 지점이다.
교향곡 5번이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의 창의적인 답변’이란 평을 받으며 다시 기회를 얻은 그는 1948년 사회분위기가 더 경직되며 동료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집중 공격 대상이 된다. 이듬해 뉴욕에서 열린 회의를 비롯해 국제회의에 소련 대표로 참석해 공산당 입장을 대변하며 또 한차례 고비를 넘긴다.
마침내 스탈린이 죽고 ‘얼음이 녹으리라는 전망, 조심스러운 희망, 경솔한 기쁨’의 시기에 그는 누가 연주해도 위대한 바흐의 푸가 같은,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음악”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러시아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에 취임하라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오페라를 비판한 당에 가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936; 1948: 1960. 그들은 12년마다 그를 찾아왔다. 물론 매번 윤년이었다.” 그의 선택은 예상대로. 잠시 용감해져 영웅이 되기보다 평생토록 겁쟁이가 된 남자는, 국가보다 자신의 음악을 더 오래 살아남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윤년마다 찾아온 세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세말하게 파고들며 작가는 묻는다. “자, 예술은 누구의 것이지?”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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