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초안 ‘6기 캠프 보관’ 문구 최종본에 삭제
추가설명 요구 후 인지한 정의용 실장 사실 확인에
“그런 게 있었느냐?”는 한민구 장관 답변 논란
“공직기강 해이 넘어 국기문란”이란 비판 커
국방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추가 반입 보고 누락 사건이 정권 교체기 국기문란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청와대는 31일 “국방부가 사드 4기의 추가 반입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자체 조사 결과를 공개한 뒤,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했다. 대선 기간 중 사드 배치ㆍ반입을 주도한 박근혜 정부 외교ㆍ안보라인에 대한 겨냥한 조치여서 이번 파문이 전ㆍ현 정권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공개한 보고 누락 과정은 공직기강 해이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국방부는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사드 추가 반입을 누락한 데 이어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할 때도 관련 사실을 감췄다. 윤 수석은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란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수 차례 강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정 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6기’, ‘캠프명’, ‘4기’, ‘추가 반입’ 등의 문구가 모두 삭제된 채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는 취지로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국방부가 최종 보고서에 사드 추가 반입을 누락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청와대도 ‘조사 중인 사안’이란 이유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여권에서는 사드 자료를 새 정부에 일절 넘기지 않는 김 전 실장과 정권 교체시기 ‘사드 알박기’의 흔적을 지우려는 한 장관의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의 과도한 비밀주의가 빚은 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와 관련한 비밀을 보고하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청와대가 설명한 한 장관의 행보를 두고는 ‘어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윤영찬 수석에 따르면 26일 국방부의 청와대 안보실 보고 직후 이상철 안보실 1차장이 보고에 참석했던 관계자 한 명을 사무실로 따로 불러 세부 내용을 확인하던 중 추가 반입 사실을 인지했다. 이 1차장은 27일 정 실장에게 이를 보고했고, 정 실장은 28일 한 장관과의 오찬에서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물었으나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한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 실장과의 오찬 발언에 대해 ‘뉘앙스 차이’임을 언급하고 “서로 주고 받은 것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보고 누락과 관련해선 “지시한 적이 없고 지시할 일도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 장관이 반어적으로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인 보고 누락은 물론 사실 확인까지 거부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란 입장이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실장과 한 장관에 대해 청와대가 아닌 모처에서 경위를 파악하는 등 조사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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