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감의 불화나 인물화로 일본 미술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화승(畵僧), 일당(日堂) 김태신(1922~2014) 스님. 일제 강점기 유학파 출신 문인이자 한국 불교 최고의 여승으로 불린 일엽(1896~1971) 스님이 출가 전 낳은 아들로, 일당스님은 ‘어머니의 길을 따르고 싶다’며 66세 늦은 나이에 출가해 화승으로 살다 2014년 입적했다.
한동안 일본에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2012년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고모(64)씨가 찾아왔다. 세 명의 아들이 모두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차에, 본인을 찾아와 밥도 차려주고 시중도 들었던 고씨에 대한 일당스님의 믿음은 점점 두터워 졌다.
2014년 7월, 일당스님은 고씨를 불러 “박물관을 짓고 싶다”며 그림 64점을 건넸다. 그림을 팔아 건립비용을 마련해달라는 뜻이었다. 일본에서 일당스님 그림은 호당 700만~80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기에, 작품을 팔아 100억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당스님은 박물관 건립이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같은 해 12월 입적했다.
문하생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박물관 건립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이에 일당 스님 유족들이 ‘그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스님이 나한테 공짜로 줬다”는 게 고씨 주장이었다. 심지어 그는 일당스님에게 받은 64점 중 30점을 단돈 3억원에 기업에 팔아 넘기기도 했다. 결국 참다 못한 유족들은 검찰에 그를 고소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부장 노정환)는 일당스님 작품 60여점을 유족 동의 없이 처분한 혐의(횡령)로 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스님이 나를 의지해 (그림을) 조건 없이 증여했다”는 고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씨는 “64점 중 30점은 팔았고, 15점은 썩어서 버렸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나눠줬다”고 진술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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