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무직 임용에서 호남 출신이 약진하면서 일각에선 역차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간 승진 등에서 차별 받아온 호남 출신에 대한 보상 차원의 인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제기된 이른바 ‘호남소외론’이 그랬듯, 새 정부의 공정한 인사 운영에 부담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호남 출신이지만 그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것만으로 족하다. 문제는 다음에 다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지역차별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8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역대 보수정권 시절의 호남 차별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다음해 대선에서 막상 자신들이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엔 놀랍게도 더 심한 호남 차별을 행했던 게 현실이다.
차별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주어진 떡을 나누려 할 때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는 나눠먹을 사람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 거기서 차별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호남 지역을 대상으로 차별이 행해져 왔다. 정치집단이 집권을 위해, 그리고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차별을 이용한 것이다. 지난 2월 서울대 국가리더십포럼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제외한 역대 모든 정부 인사에서 호남 출신이 차별을 받아왔다. 이승만 정부를 제외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역대 최악의 호남 차별이 행해졌음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이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었던 원인은 뭘까. 우선 인사 차별이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이를 정치문제로 치부하며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공론화가 되지 않는다. 호남 차별이 정치적 동기에서 행해진다 하더라도 그건 기본적으로 정치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다. 그래서 비록 선언적 의미밖에 없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출신지역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별 받는 호남 출신들의 태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고 싶다. 호남 출신이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시정을 요구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역차별이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남 출신은 대부분 차별에 저항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차별 받는다는 것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하면서 그걸 숙명처럼 감내해왔다. 그들이 차별에 대응해 유일하게 하는 것은 선거 때 호남 기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남에선 늘 몰표가 나온다. 그러나 그 몰표가 호남 차별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구에서 호남 대비 2배 이상을 점하는 영남의 몰표를 유도해 영남 기반 보수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만들 뿐이다. 그러니 투표는 호남 출신의 한풀이 수단에 그친다. 오히려 호남 출신은 그런 투표 결과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 출신들에게 지역감정의 원인 제공자로 몰리기 일쑤다.
출신지역을 차별하려는 유혹은 어느 정권에나 있을 수 있다. 그 대상이 호남 출신에 국한되지도 않을 것이다. 차제에 정권에 따라 출신지역을 차별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국민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성, 연령 등 개별적 요인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처벌규정 등 구체적 규율수단을 갖춘 법률이 제정되거나 발의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취지에서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을 배제하는 공정한 인사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출신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의 제정으로 더 이상 출신지역을 차별할 수 없게 되면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병폐인 영ㆍ호남 지역대결이 청산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결혼이민자, 동성애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에 대한 차별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 분위기를 개방적ㆍ관용적으로 바꾸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독일에서도 통일 후 동독출신 차별 문제가 있었던 것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통일 후 북한 출신을 평등하게 대우하기 위해서도 출신지역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요하다.
정재룡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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