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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사장님… ‘乙중의 乙’ 특수고용직 숙원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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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사장님… ‘乙중의 乙’ 특수고용직 숙원 풀릴까

입력
2017.05.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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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ㆍ보험모집인 등 300만명 육박

4대보험 혜택도 제대로 못받아

근로자 설정 땐 사용자 부담 늘어

노조법 등 개정까진 쉽지 않을 듯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노동부에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하면서 300만명에 육박하는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오랜 숙원이 풀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을 만큼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지만, 보험업계 등의 반발도 거세 여소야대 국면에서 입법 관문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동권리 없는 ‘무늬만 사장님’

2015년 11월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은 229만6,776명(2014년 기준)이다. 하지만 최근 배달 대행 업체의 배달원 등 새로운 형태의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이 생겨나면서 일각에서는 이들 숫자가 3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노동환경 문제가 불거진 방송외주 PD(예술)를 비롯해 골프장 캐디(스포츠), 학습지 교사(교육), 보험모집인(금융), 택배 기사(배송) 등 이들은 각 업계에 골고루 포진해있다.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은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ㆍ도급 등의 형태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근로자로 분류될 경우 고용주가 부담해야 할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실질적 사용자들의 지휘ㆍ통제를 받는 ‘무늬만 사장님’ 신세인 경우가 허다하다. 20년차 학습지 교사인 김모(52)씨는 “1년 계약직으로 기본급 없이 회원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일하는 형태이면서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최근 4대 보험 중 유일하게 산재보험만 50% 혜택을 받기 전까지는 일하다가 회원 집 반려견에 물려도 스스로 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할 정도로 처우가 열악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노동권 제한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2007년에도 인권위가 노동3권과 4대 보험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권고안을 냈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산재보험법을 개정해 일부 직종에 한해 산재보험의 일부 혜택(보험료 50%만 근로자 부담)만을 부여했다. 소극적인 정부 대응에 사회적 갈등은 증폭됐다. 같은 해 레미콘, 덤프트럭 차주들이 건설노조에 가입하자 레미콘협회 등이 근로자가 아닌 차주들의 지위를 들어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며 이를 저지했고, 2011년에는 학습지교사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각 업체들이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조 탈퇴 권유, 계약 해지 등으로 맞서며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입법까지 험로 예상

국내에서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들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보호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독일 제정법에 따르면 ‘경제적 종속성으로 인해 유사근로자로 간주되는 자’ 역시 근로자로 규정해 단체협약 등 노동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근로자의 개념을 ‘본인의 직업적 고객에 해당하지 않는 계약상대방에게 일정한 근로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노무제공자)’로 확장하고 있고, 캐나다도 노사관계법에서 ‘종속적 자영업자’의 개념을 둬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있다.

인권위의 권고로 우리나라도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권리 신장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입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특수고용직 근로자에게 노동 3권의 지위를 인정하려면 현행 노조법 2조에서 근로자의 정의(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개정하거나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날 인권위가 권고한 것도 이 부분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와 상관없이 고용부도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노동권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라며 “최근 늘어난 다양한 형태의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의 형태를 감안해 이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법이 본격화하는 경우 사용자측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보험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40만명 보험설계사들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할 경우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에 따른 수입 차이가 극명한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에 가깝다”며 “법 개정이 강행된다면 실적이 저조한 설계사와는 계약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정치권의 반대 논리 역시 무분별하게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을 근로자로 설정할 경우 사용자 측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소야대 국면에서 넘어야 할 산은 더 높아 보인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건설ㆍ기계 협회 등 각 사용자 단체들로서는 보험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 입법 관련 로비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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