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자 가입 금지’ 국제 기준 어긋나
교원노조법 개정도 따라야 해 진통 예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화와 관련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제87호)에 대해 정부가 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이 경우 해고자는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한 교원노조법 개정도 함께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통과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전교조는 28일 결성 28주년을 맞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28일 “전교조와 연관된 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 등에 대해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고 갔다”며 “공약사항이며 국제 기준인 만큼 빠르게 추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협약 비준은 국무회의 의결 뒤 대통령이 재가하면 이뤄진다. 다만, 추가 예산 소요나 국내법과 충돌 시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
ILO 협약 제87호는 ‘근로자 및 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관리 및 활동할 권리를 가진다’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노조의 자율적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현직 교원만을 조합원으로 규정한 현행 교원노조법 제2조와, 이를 토대로 고용부가 2013년 “해직자 9명이 조합원에 포함된 것은 법 위반”이라며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것은 협약 내용에 배치된다. ILO 이사회 측은 당시 “한국 정부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노조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ILO 결사 자유위원회의 거듭된 권고를 어겼다”라며 비판한 바 있다. 해외에서는 현직 교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경우가 없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교원노조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무회의에서 ILO 협약 비준이 진행되려면 교원노조법과 노조법 등 협약과 상충되는 국내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것이 우선적인 절차”라며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사유에 대한 부분이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당시 입장을 철회하려면 철회 요건이 필요한데 관련 법안 개정, 협약 비준 등 요건을 갖춘 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법 개정에 야당이 얼마나 협조할 지는 미지수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후 고용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해당 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심 재판부는 교원노조법 2조의 위헌성을 들어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했지만, 헌재에서 기각됐었다.
ILO 협약 비준은 전교조와 관련해서만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187개국이 속한 ILO의 협약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61개를 비준했지만, 한국은 29개에 불과해 노동 후진국으로 불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8일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성과를 다루는 자리에서 “한국이 여전이 한-EU간 FTA에 명시된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세계 흐름에 맞춰 ILO 협약을 비준하자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기간 제87호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강제노동 협약(제29호)과 강제노동 철폐 협약(제105호) 등을 비준하고 관련 국내법을 개정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새 정권이 추진하는 ILO 협약 비준과 관련 법개정은 노동권리를 위해 당연히 이뤄져야 할 것들”이라며 “하지만 전교조가 지난 4년간 노조 활동을 제대로 못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헌재 결정과 인권위 권고 사항에 따라 부당한 행정 처분을 즉각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법에 효력을 미치는 ILO 협약을 비준하려면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여러 노동 관련 법안들을 손질해야 해 개정 절차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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