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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거 정권 흔적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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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거 정권 흔적 지우기

입력
2017.05.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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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녹색 담론을 주도한 녹색 정부였다. 과잉 홍보와 4대강을 망친 토건 일변도 사업으로 빛 바래긴 했으나 녹색성장 전략이 시대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녹색기후기금(GCF)을 유치하는 등 한국의 에너지와 기후변화 정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각 부처는 앞다퉈 ‘녹색’ 지우기에 나섰다. 관가에선 “녹차도 마시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녹색성장에 깊숙이 관여했던 부서는 힘이 많이 빠졌고 인사에서도 푸대접을 받았다.

▦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가 ‘녹색’을 대신했다.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17개 거점도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이 협력해 창업 열기를 전국에 확산하겠다는 의도였다. 한데 대기업이 돈을 대고 정부가 운영을 주도하는 희한한 구조였다. 전혀 창조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다는 비아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더욱이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인 차은택이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개입했다. 당시 재계 인사들은 “정권 바뀌면 다 문닫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 박근혜 정부 흔적 지우기가 한창이다. 울산 동구는 탄핵정국이 시작된 작년 말 대왕암공원 입구에 세워졌던 대통령 방문 안내판 2개를 철거했다. 관광객들이 안내판 속의 대통령 사진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세종시민들은 세종시 청사에 세워진 박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적힌 표지석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은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중앙부처 홈페이지에서 창조경제 심벌이 사라졌고 자치단체들은 관련 예산을 대폭 줄였다. 센터 명칭에서도 창조경제가 빠지고 있다.

▦ 정권이 바뀌면 국정 과제에도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과거 정부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차별화가 정답은 아니다. 적폐와의 단절은 필요하나 정책 연속성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수천억~수조 원 예산이 들어간 사업을 과거 정권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용도 폐기해선 안 된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해 “잘 되고 있는 부분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니 다행스럽다. 현 정부도 5년 뒤면 과거 정부가 된다. 정권의 성공보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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