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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찾아온 첫 중국 SF… 대륙의 기상이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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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찾아온 첫 중국 SF… 대륙의 기상이 엿보여

입력
2017.05.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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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장르물에 친숙한 한국

진입장벽 뛰어넘고 소개돼

자신을 주변국으로 인식 않고

거침없이 세계를 누벼

물리학자 주인공의 모험

하드SF를 접하는 기회이기도

'삼체'의 류츠신 작가. 중국 SF계의 3대 천왕으로 불리는 최고의 중국 SF작가다. 자음과모음 제공
'삼체'의 류츠신 작가. 중국 SF계의 3대 천왕으로 불리는 최고의 중국 SF작가다. 자음과모음 제공

한국 독자들이 접하는 번역 SF는 주로 영미권의 글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SF라는 장르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크게 성장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수입한 장르문학이다. 둘째로 번역과 출판, 지명도와 접근성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영미권 외 SF가 한국 독자를 만나려면 그 나라의 SF를 이해하는 좋은 기획자, 장르를 이해하는 좋은 번역가, 그러한 작품의 가치를 발굴해 한국에 소개할 출판사가 있어야 할 텐데, 한국의 출판시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국에 소개된, 휴고상 받은 첫 중국의 SF

류츠신의 ‘삼체’는 이런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정식 소개된 첫 중국 SF다. 혹은 그런 한계 때문에 ‘이제야’ 한국에 소개된 중국 SF라고 해도 좋겠다. 류츠신은 1999년부터 중국의 SF상인 은하상을 9차례나 수상하고 2010년에는 중국과학소설작가협회의 성운상을 수상한 중국의 대표적인 SF작가다. 본래 2007년 작인 ‘삼체’는 2014년 미국의 대표적인 SF출판사인 토어사를 통해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그해 아시아권 SF 장편소설로서는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했다.

‘삼체’는 저자의 ‘지구의 과거’ 3부작으로, 그 첫째 권이 ‘삼체’, 둘째 권이 ‘삼체 2부: 암흑의 숲’이다.

삼체 1ㆍ2

류츠신 지음ㆍ각권 이현아, 허유영 옮김

단숨 발행ㆍ각권 448, 708쪽ㆍ각권 1만5,700원, 1만6,800원

‘삼체’는 나노 소재 연구자인 왕먀오가 어느 날 갑자기 군 본부 작전 센터로 납치되다시피 불려가며 시작된다. 이곳에서 왕먀오는 오래 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 매력적인 물리학자 양둥이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양둥 뿐 아니라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연이어 자살하고 있다는 것도. 군은 역시 유명한 교수이자 학자인 왕먀오에게 ‘과학의 경계’라는 일종의 학술조직이 연쇄 자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이 단체에 회원으로 잠입해 달라고 요청한다.

왕먀오는 이 요청을 거절하지만 양둥의 남자친구이자 역시 기초물리학자인 딩이를 충동적으로 찾아가고, 딩이로부터 양둥의 유서에 담긴 뜻을 듣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왕먀오의 눈에는 뜻을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기심과 불안감에 미칠 지경이 된 왕먀오는 결국 자진하여 ‘과학의 경계’ 회원인 선위페이에게 연락하고, 선위페이가 하고 있던 게임 ‘삼체’에 접속한다.

중국다운 광대함과 치밀한 물리학이 만난 SF

‘삼체’는 큰 소설이다. 간혹 중국을 두고 반 농담처럼 대륙의 패기니 기상이니 하는 말을 한다. ‘삼체’는 긴 역사와 선명한 이념을 가진 문화권, 자신을 주변국으로 인식하지 않는 나라의 SF작가가 얼마나 광대하고 거침없는 세계를 누빌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자연스러운 거대함을 대하며, 한국의 SF작가인 나는 우리의 SF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SF를 쓰다 보면 분투하고 고민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우리의 언어가 지구의 언어가 아니고 우리의 문화가 세계 어디서나 당연하지 않으며 우리는 국제사회의 의사결정을 주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주변국으로서의 경험을 가진 SF작가에게, ‘삼체’는 어떤 정치 뉴스나 문화적 유산보다도 현대 중국의 거대함을 실감케 한 소설이다.

한편, 이 소설에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학습해 온 문화적 배경과 역사가 깔려 있다. 예(禮)와 공자, 진시황의 병마용이 아닌 인간 컴퓨터, 중국 근현대사를 가르는 문화대혁명. ‘삼체’에는 영미권 SF보다 한국 독자에게 더 실감나게 와 닿을 법한 요소들이 있고, 이 요소들이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 일종의 다리가 된다. 나는 ‘삼체’를 읽으며 비-영미권의 SF독자라는 정체성을 새삼스레 재발견했고, 이는 소설과 영화, 게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영미권, 특히 평소 미국의 문화자본에 압도당해 있던 한국인에게 좋은 자극이었다.

‘삼체’는 본격적인 하드SF이기도 하다. 애당초 등장인물들이 물리학자들이니! ‘삼체’라는 게임의 세계를 함께 펼쳐 장벽을 낮추고 있기는 하나, 이 소설을 소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쉬운 책’이나 ‘오락소설’이라고 소개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고,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리라 믿는다. 이 소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독자에게 도전이 되는 이야기이고, 이런 크고 단단한 이야기는, 이런 지적 도전의 기회는, 정말, 좀처럼 없다.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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