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행보에 과분한 지지” 본인도 놀라
디테일 강한 과제해결 역량 등 보여 줄 때
신념보다 책임윤리로 ‘모두의 리더’ 돼야
주변에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봤다”는 말이 넘쳐난다. 물인 줄 알았더니 불이고, 곰인 줄 알았더니 호랑이란다. 얘기를 하다 보면 그중에 절반은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사람들이다. 몸에 밴 탈권위와 소통 행보, 친문 패권의 냄새를 지운 파격적 인사, 진정성 느껴지는 화해와 치유 몸짓, 단호함과 책임감을 버무린 안보관리, 하나회 청산을 연상케 한 검찰개혁, 사람 중심 경제 패러다임 등 그는 취임 후 뉴스를 몰고 다녔다. 41%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보름 만에 80%를 훌쩍 넘은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지와 기대에 우려를 표시하며 대통령 행보의 선후와 완급,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는 말도 조심스레 나온다. 사실 문 대통령 스스로 “제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없이 그냥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뿐인데 과분한 칭찬을 받고 있다”고 말했듯이, 지금껏 얘기는 ‘듣겠다’ ‘바꾸겠다’ ‘고치겠다’의 세 단어로 압축된다. 박근혜 정부가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국정농단을 일삼은 까닭에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다짐만으로도 반대자에까지 감동을 준 것이다.
새 정부가 디테일에 강한 국정관리로 실력을 보여 줄 때는 지금부터다. 외교안보든, 정치든 경제든 모든 문제는 이해당사자들의 대립과 충돌로 빚어진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이나 4대강처럼 다툼의 여지가 별로 없는 사안은 대통령의 의지나 업무지시로 단칼에 매듭 자르듯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의 핵심 이익이 충돌해 양쪽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면 사정은 다르다. 출구전략을 찾기 어려운 사드가 국제적 차원에서 그런 범주라면, 최저임금은 국내적 차원에서는 새 정부가 머리를 싸매야 할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올해 6,47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향후 3년간 연평균 15.7%씩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1989년 이래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16.6%)을 제외하면 연 인상률은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더구나 15.7%는 비교적 인상폭이 높았던 박근혜 정부 4년간 평균 인상률 7.4%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노동계가 매년 두 자릿수 인상을 거세게 요구했는데도 인상률이 제한적이었던 것은 최저임금 적용대상 근로자의 82%가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즉 지불능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또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52%는 연평균 매출이 4,600만원 이하이고 월 소득은 187만원 수준이다. 그래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최저임금 1만원은 내가 노동자가 될 것인지 사용자가 될 것인지 가름하는 변곡점”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6월 말까지 내년 인상률을 결정해야 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지금껏 회의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노동계가 당장 내년부터 1만원을 보장하라며 장외를 맴돌고 있어서다. 반면 난색을 표하는 사용자 측, 즉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 역시 새 정부가 중기청 승격까지 약속하며 돌보겠다고 약속한 계층이다. 최저임금 문제를 보는 문 대통령의 심정이 우산장수 아들과 나막신장수 아들을 함께 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조차 공약 이행 목표 시기를 2022년으로 늦춰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최근 노동단체를 만난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재정을 동원하더라도 이 공약을 지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한 축인 최저임금 해법은 문재인 정부의 역량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 지도자의 약속은 무겁게 여겨야 한다. 리더십은 그로부터 따라온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이 대선 후보의 눈과 같을 수는 없다.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앞서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량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지지자들을 설득하며 때론 매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대통령이 돼 친구 노무현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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