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무서워 않는 법치 시스템
우리도 정착시켜야 할 개혁 과제
외교로 불똥 튀면 파장 만만치 않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경질한 대통령을 특별검사가 수사하는 미국의 탄핵 정국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로 치면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대통령 지시가 합법적이지 않다며 대통령을 욕보인 사건이다. 대통령 의중을 받들지 못한 공직자가 순순히 사표 내고 직에서 내려오는 걸 정답으로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묵언수행, 통치자의 권위에 흠집을 남겨서도 안 된다. 미 법무부는 도리어 대통령이 사법방해를 했다며, 특검을 발동했다.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는 구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진작 그랬더라면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을 분노와 애잔함을 뒤섞어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로선 그런 민주적 과정을 정착시켜야 하고, 공직자들도 더는 핑계 대지 말고 법치에 직을 걸어야 한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주화, 문민화가 비민주적 상태로부터 탈피, 권위주의적 적폐 청산에만 그친다면 미완의 개혁이고, 불온한 개혁이다.
트럼프 ‘탄핵 국면’이 혼란스런 더 큰 이유는 그것이 가져올 만만치 않은 파장 탓이다. 반복되는 역사는 탄핵도 예외가 아니어서, 앞서 두 번의 미 대통령 탄핵 논란은 한 번은 비극,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 끝이 났다.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퇴를 했고, 빌 클린턴은 지퍼게이트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다.
이제 막이 오른 트럼프 탄핵국면이 어떤 결말을 따를지 알기 어렵지만, 제3국에게는 소극인 적이 없던 게 전례의 경험이다. 위기에 몰린 대통령들이 내치 문제를 외치로 해결하려거나, 내치 문제로 인해 외치를 등한시하는 때문이다. 탄핵 논란이 강도를 더할 때 닉슨이나 클린턴의 외교는 악몽으로 변하고는 했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의 행보를 예상하면 북핵 문제는 해법의 추진력이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국면 전환을 위한 재료가 될 수도 있다. 닉슨 옆의 헨리 키신저 같은 외교의 조율사가 트럼프 옆에 보이지 않는 건 더 가혹한 현실이다. 트럼프는 이미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의 발사버튼을 누른 바 있다.
1998년 지퍼게이트 때,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알 카에다, 생화학무기 문제에 대응한 것이었지만 언론은 섹스 스캔들 덮기용이라고 기록했다. 1974년 8월8일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26개월간 진행된 워터게이트 사건에선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 기습에 나선 4차 중동전쟁과, 오일쇼크는 한때 3차 대전의 위험으로 치달았다. 닉슨은 외교를 탈출구 삼아 집착했지만 반대로 그 손을 놓기도 하면서, 결국 외교에서는 국무장관 키신저가, 내치는 비서실장 알렉산더 헤이그가 전권을 행사했다. 소련이 핵무기와 군을 중동에 보내려 할 때도, 핵전쟁 임박 전투대비태세를 발동하고 전군을 비상대기 시켜 충돌을 막아낸 것은 닉슨이 아니었다. 키신저는 문제의 시간에 닉슨이 상황을 안정시켰다고 언론에 말했지만,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던 닉슨은 어느 결정에도 개입하지 못했다. 나중에 국무장관을 지낸 래리 이글버거는 워터게이트 마지막 몇 달간 누군가 외교적으로 시험하려 했다면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성공의 시험대는 내치보다 외치에 있다. 남북 문제가 풀리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다. 주변 여건이 달라진 것 없이 난제만 산적한데도 기대감이 높은 건 그 때문이다. 국제법 효력을 지닌 유엔 안보리 결의를 피해 남북 교류의 문을 여는 것은 북한과 국제사회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가능한 어려운 길이다. 남북 문제는 역대 정부들도 가장 오래 매달렸지만, 성과내기는 가장 어려운 사안이었다. 여기에 트럼프 탄핵 정국이란 새로운 변수까지 감안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가 엊그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법정 모습을 봤다면, 어떻게 하든 탄핵만큼은 피하고 싶어할 것 같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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