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의 치세'로 유명한 당 태종 옆에는 명신 위징(魏徵)이 있었다. 태종이 친형인 태자 건성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기 전 건성의 측근 막료였던 위징은 동생의 야욕을 누차 경고했다. 태종이 즉위 후 이 사실을 알고 형제를 이간시킨 이유를 추궁하자 위징은 "태자 건성이 내 말만 들었다면 오늘의 재앙은 없었을 것"이라고 되레 큰소리쳤다. 그럼에도 간의대부로 발탁된 위징은 "군주가 영명한 까닭은 널리 듣기 때문이고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편협함 때문"이라는 등 간언을 아끼지 않았고, 태종은 충신보다 양신이길 원했던 그와 대업을 이뤘다. (☞ 김원중의 고전산책 '당태종의 열린 리더십과 위징의 간언')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사와 용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화와 금언은 넘쳐난다. 위 사례는 그중 하나다. 특히 국가 지도자라면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얘기를 귀에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어제 수인번호 503을 가슴에 달고 법정에 출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행히도 이 같은 역사의 교훈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과 함께 지냈던 요리연구가 김막업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외에는)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싫어해 '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을까'라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 문재인 정부 출범 보름 만에 '친문 패권'이란 말이 사라졌다. 청와대와 정부 요직 인사가 통합 개혁 전문성 파격 탕평 여성을 넘나들며 언론이나 정치권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전개된 덕분이다. 그 사이에 민주당이 전율 운운하며 듣기 민망스러운 찬사를 내놓은 것은 그렇다 쳐도, '문모닝' 등 비꼬기로 유명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까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절묘한 인사태풍"이라고 사실상 투항했다. '인사가 망사(亡事)'였던 박근혜 정부를 뒤집으니 말 그대로 '인사가 만사'인 문재인 정부가 됐다.
▦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2011년 펴낸 책 '운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어제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19대 대통령으로 참석, "노무현의 꿈이 촛불광장 시민의 힘으로 부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무를 다한 뒤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그의 숙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뜻일 게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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