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75) 한화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한화는 23일 “김성근 감독이 지난 21일 대전 삼성전을 마친 뒤 구단과 코칭스태프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물러난 자리는 이상군 투수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운영한다. 구단 측은 자진 사퇴로 공식 발표를 했지만 김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0월 한화 팬들이 한화그룹 본사에서 김성근 감독을 원한다는 1인 시위까지 나설 만큼 박수와 환호 속에 한화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번에도 어김 없이 마지막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계약기간 3년 총액 20억원에 한화의 제10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기대 이하의 성적과 구단과의 마찰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계약 첫 해였던 2015년에는 68승76패로 6위, 이듬해엔 66승3무75패로 7위에 그쳐 ‘가을 야구’에 실패했다. 올 시즌에도 22일까지 18승25패로 9위에 처졌다. 성적 부진에 한화는 2016시즌 종료 뒤 1군 감독 출신 박종훈 단장을 영입하며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을 1군 운영으로 한정했고, 이후에도 현장과 프런트의 갈등도 깊어졌다.
김 감독은 야구계나 팬들 사이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약 팀을 강 팀으로 바꿔놓는 지도력과 굴곡 있는 인생에서 묻어난 ‘일구이무(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등 울림 있는 어록으로 ‘야신’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지만 타협 없는 지도 스타일로 구단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는 나머지 늘 선수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김 감독은 프로에서만 일곱 팀을 맡았는데, 모두 해고됐다. 1984년 두산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1989~90년), 삼성(1991~92년), 쌍방울(1996~99년), LG(2002년), SK(2007~11년), 한화(2015~17년)를 거쳤다. 태평양과 쌍방울 등 약체를 맡아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통해 강 팀으로 환골탈태시켰고, LG 감독이던 2002년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SK 재임 시절 네 차례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차례 우승을 거머쥐어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2002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내고도 “지도 스타일이 구단과 맞지 않는다”며 경질됐고, SK 시절에는 구단 고위층과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2011년 말 해임됐다. 2012년부터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재기의 꿈을 가진 선수들을 지도한 김 감독은 2014년 9월 원더스가 해체하면서 ‘야인’으로 돌아갔고, 곧바로 한화 사령탑에 부임했다. 사실상 한화에서 마지막 프로 구단의 지휘봉을 잡았던 김 감독은 불명예스러운 퇴진의 반복 탓에 이제 야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 감독마저 실패한 만년 하위 팀 한화는 사령탑들의 무덤이 됐다. 2007년 가을 야구를 경험한 이후 9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 기간 사령탑은 김인식 감독부터 한대화 감독, 김응용 감독에 이어 김성근 감독까지 한화 팬들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하게 물러났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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