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오후,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내 마음은 무척 설레였다.” 이 문장에는 맞춤법에 어긋난 곳이 두 군데 있다. ‘날씨가 맑아지다’라는 뜻의 동사는 ‘개이다’가 아니고 ‘개다’이므로, ‘*개인’을 ‘갠’으로 고쳐야 한다.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다’라는 뜻의 동사는 ‘설레이다’가 아니고 ‘설레다’이므로, ‘*설레였다(←설레이었다)’를 ‘설레었다/설렜다’로 고쳐야 한다. ‘설레이는, 설레임’ 같은 표기들도 자주 눈에 띄는데 이들도 ‘설레는, 설렘’으로 써야 한다.
‘개이다’나 ‘설레이다’에 들어간 ‘이’는 군더더기다. ‘개다’나 ‘설레다’와 구분될 만한, 특별한 뜻을 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데다, 메다, 배다, 에다’ 등에도 군더더기 ‘이’를 넣어 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불에 데였다(←데이었다)’는 ‘불에 데었다/뎄다’로, ‘목이 메여(←메이어) 말을 못 잇다’는 ‘목이 메어/메 말을 못 잇다’로 고쳐 써야 한다. ‘몸에 배인 습관’은 ‘몸에 밴 습관’으로, ‘살을 에이는 바람’은 ‘살을 에는 바람’으로 고쳐 써야 한다.
단, ‘에이다’의 ‘이’는 군더더기가 아닌 경우가 있다. ‘에다’의 피동형으로서의 ‘에이다’는 표준어다. ‘에다’가 ‘무엇을 도려내듯 베다’를 뜻한다면, 피동사 ‘에이다’는 ‘무엇이 도려내듯 베어지다’를 뜻한다. ‘계곡의 밤바람이 코끝을 에어 낼 것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김용성 ‘리빠똥 장군’)’처럼 ‘에다’는 베는 대상이 목적어로 나타난다. 반면 ‘육십 년간에는 살인 광선과도 같은 폭염도 있었을 것이며, 살점이 에이는 추위도 있었을 것이지만(이무영 ‘흙의 노예’)’처럼 ‘에이다’는 베이는 대상이 주어로 나타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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