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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가 곧 나의 일생” 50년 기록물 군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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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가 곧 나의 일생” 50년 기록물 군에 기증

입력
2017.05.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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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 아버지’ 지정환 신부

/전북 ‘임실치즈’ 역사의 산증인인 지정환(왼쪽)신부가 22일 1964년 임실에 부임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53년간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 등을 한데 모은 기록물을 심민 임실군수에게 전달하고 있다. 임실군 제공
/전북 ‘임실치즈’ 역사의 산증인인 지정환(왼쪽)신부가 22일 1964년 임실에 부임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53년간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 등을 한데 모은 기록물을 심민 임실군수에게 전달하고 있다. 임실군 제공

“임실치즈 역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임실치즈의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전북 ‘임실치즈’ 탄생의 주인공 지정환(86·디디에 세스테벤스)신부가 22일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한 이후 50년간 기록한 사진 등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지 신부는 부임 당시 임실읍내 사진부터 치즈를 만드는 모습, 당시 치즈 모양, 공장을 짓는 모습, 임실치즈와 함께한 청년들, 치즈를 보관할 토굴을 파는 모습, 현 임실 치즈테마파크 사진 등을 편집해 앨범으로 만들었다.

기록물은 임실읍 성가리에 조성 중인 임실치즈 역사문화공간에 전시된다. 군은 임실치즈 생산 50주년을 기념해 지 신부의 생가와 그가 최초로 세운 공장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7월 말 준공 예정이다.

벨기에에서 태어난 지 신부는 1959년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직후 가난하고 척박한 임실을 위해 고민하다 선물로 받은 산양 2마리로 치즈 만들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즈 생산은 쉽지 않았고 3년간 실패 끝에 성공했다.

이후 1968년 까망베르치즈와 1970년 체다치즈를 잇따라 생산해 조선호텔과 신라호텔 등에 납품했다. 이를 계기로 치즈가 인기를 끌자 젖소 사육과 함께 조합을 육성하고 치즈공장을 통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이익금은 농민에게 고루 분배했다.

1981년 치즈사업이 활발해지면서 그는 주민들 스스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에게 나눠 주고 가방 하나만 든 채 17년 만에 임실을 떠났다. 그는 1984년 완주군 소양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무지개의집’을 설립해 현재까지 봉사하고 있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은 지 신부는 지난해 2월 4일 법무부로부터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지 신부는 “대한민국 치즈의 원조라는 브랜드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나의 신념이었다”며 “주민들과 협력해 함께 잘살아 보자는 공동체 정신과 희생, 열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임실=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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